“환경수업 때 받은 충격… 일회용품 안쓰고 장래희망도 바꿨죠”

입력 2021-06-02 04:02
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서전고 학생들이 지난 4월 14일 학교 텃밭에서 감자 등을 직접 키우고 수확해 먹어보는 노작(勞作) 수업에서 감자밭에 물을 주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가르치고 있다.

조명을 낮춰 어두침침해진 교실의 대형 모니터에서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툰베리는 기후위기 대응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은 스웨덴의 10대 소녀다. 2018년 학교에 가지 않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 전 세계 수백만명이 참여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운동을 촉발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15분짜리 짧은 동영상을 툰베리와 비슷한 또래 20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어두워진 틈을 타 엎드려 눈을 감기도 하고, 딴짓을 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동영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툰베리가 기후변화에 바로 지금 대응할 때라고 강조하며 연설을 마무리하자 교실이 다시 밝아지고 엎드려 눈 감았던 아이들이 하나둘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지난 25일 충북 진천군 서전고등학교 1학년 4반의 환경 수업이다. 이날 수업은 ‘영상으로 이해하는 기후위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영상 시청 뒤 조별 토론과 발표가 이어졌다. 조별 토론이 시작되자 교사가 왜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잠들어 영상 내용을 아예 모르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어떤 학생은 툰베리가 제시한 수치를 언급하며 “석유를 그렇게 많이 쓰나?”라고 했다.

한 여학생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해결책은 이미 있고 실천의 문제라는 걸 오늘 알았는데 실천이 왜 어려운지 궁금해졌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정부도 시민도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관점으로 영상을 본 학생도 있었다. 한 남학생은 “툰베리가 한국 학생이었으면 각광받았을지 생각했다. 우리나라 학생은 너무 발언권이 없어 누군가 1인 시위를 했다면 여기저기 압박받고 스스로 지쳤을 거 같다”고 했다.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교사가 “별도로 다뤄볼 주제”라며 이 학생을 격려했다. 수업은 너무 심각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쿨’한 분위기였다. 지속가능한 발전, 기후위기 대응이란 거대 주제가 조금씩 천천히 학생들에게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1학년생들이 지난 25일 환경 수업에서 기후위기 관련 동영상을 시청한 뒤 의견을 발표하기 위해 손을 드는 모습.

서전고는 환경 교육을 유독 강조한다. ‘지속가능성’을 미래 세대의 핵심 역량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회 여러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 가운데 인류와 생태계의 공존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인재가 각광받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대입에 묶여 있는 교육과정을 쪼개 환경 수업에 할애하고 있다. 1학년 때는 기초이론 수업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2학년 때는 직접 농사를 지어보고 관심 있는 주제를 탐구하며, 3학년 때는 그동안 배운 것에 대해 심화활동을 한다. 교육부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과 새 교육과정(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생태·환경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어서 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환경 수업은 학생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었다. 3학년 영지는 환경 수업을 접한 뒤 진로가 바뀌었다. 원래 일상 속 화학반응이 흥미로워 화학자를 꿈꿨지만 환경공학으로 변경했다. 2학년 때 자율연구 주제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연구하다 플라스틱의 폐해를 접한 게 계기였다고 했다. 영지는 “플라스틱에 관심이 많아 플라스틱을 학교에서 퇴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뒤 기업에 들어가면 내부에서 환경윤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서전고는 학교 자체가 생태·환경 교육의 장이다. 교실 뒤편의 나무 데크 산책로 주변은 학생과 교사들이 꾸미는 텃밭으로 조성돼 있다. 건물 내부 테라스 공간에도 텃밭이 조성돼 있다. 학교 주변 나무들도 환경 시간이나 생물 시간에 배우는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50여종의 수종을 세심하게 골랐다.

영지는 고교에서 인상 깊었던 환경 수업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율연구에서 나비 알을 채취하기 위해 학교와 집 주변 산을 친구들과 헤집고 다닌 일, 학교 텃밭에서 직접 작물을 심어 수확하고 친구들과 요리해 선생님과 나눠 먹었던 일 등을 나열하며 웃었다. 다만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 3년 내내 무언가를 심을 수 있는 개인 텃밭이 주어졌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실천을 강조한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2학년 김유빈양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 지구에 지금 우리가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텀블러를 쓰고 있고 플라스틱 물병을 비롯한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려 한다”며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는데 환경 수업을 받으면서 환경 분야 국제기구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1학년 이수빈양은 “수업시간에 접한 영상과 사진 자료에서 죽은 새 뱃속에 플라스틱이 많아 충격을 받았다. 이후 미세플라스틱 실태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마트에서 섬유유연제를 고를 때 미세플라스틱이 적게 들어 있는 걸 고르고 있다. 일상이 바뀐 것”이라며 “법조인이나 외교관, 국제기구 쪽에서 일하고 싶은데 꿈을 이루더라도 학교에서 경험한 내용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천=글·사진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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