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여대 인근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이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범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는 수사가 어려워 난감한 상황이다. 오는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법 시행 전까진 물리적 피해가 있어야 하고, 입증을 해도 대부분 경범죄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 성북구 소재 A여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남성이 여대생 자취방 인근을 돌아다니며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다수 올라왔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장면을 지켜본다거나 여대생의 앞길을 막은 후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달아났다는 게 주 내용이다. 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관련 신고 10여건이 접수됐다.
익명 공간에서 시작된 피해 제보였지만 이어진 여대생들의 신고로 경찰은 용의자 인상착의를 추정했다. 이후 관할 지구대에서 순찰 중 수상한 행동을 하는 30대 남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추가로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신고 내용 속 남성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경찰은 이 남성을 불러 조사할 수가 없었다. 물리적인 피해가 입증돼야만 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경찰서도 B여대 인근에서 속옷 차림의 남성이 여성에게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사건이 벌어져 수사에 나섰다. 노원서는 용의자를 검거한 후 즉결심판(형사소송을 거치지 않고 약식재판으로 처리하는 절차)에 넘겼다. 길을 막거나, 시비를 거는 등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범죄에는 경범죄처벌법 정도만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이 대부분이다.
앞선 A여대 사건 역시 피해 사실이 확인돼도 벌금형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범죄의 위험성이나 여성들의 불안감을 알고 있다”면서도 “법적 근거로 수사해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피해가 없으면 중대 혐의를 적용할 수 없어 난감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경찰 관계자는 “A여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범죄 내용 모두 실제 범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지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등은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한다.
법 시행까지 공백기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남은 과제다. 순찰 강화와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주거지에 실제로 침입하지 않았더라도 불안감을 조성했다면 관련 혐의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법원은 2019년 5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여성의 자취방에 들어가려고 한 남성에게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