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꼬마 백구 ‘모찌’ 운명 바꾼 ‘90일의 임시 보호’ [개st하우스]

입력 2021-06-0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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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단기 임시보호 프로젝트 덕분에 목숨을 구한 30여 마리의 유기동물들. 2번째 줄 5번째가 유일하게 입양 가지 못한 백구 모찌다. 팅커벨 프로젝트 제공

지난해 11월 경기도의 한 유기동물 보호소에선 강아지 33마리가 안락사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서 포획된 유기견이 입소하는 곳입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인터넷 포털과 SNS에 한 마디 부탁을 남겼습니다. 생후 2개월 된 막내 백구 모찌와 친구들의 삶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그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요.

90일 임보 프로젝트의 시작
유기동물의 안락사를 막기 위해 단기 임보와 입양을 추진한 동물구조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 팅커벨 프로젝트 제공

주인공은 동물구조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의 대표, ‘뚱이 아저씨’ 황동열씨였어요. 그는 33마리 유기견을 살리기 위한 기획을 생각해냈습니다. 유기견 안락사의 가장 큰 원인인 수용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3명의 가정 임시보호(임보) 봉사자를 모집한 것이죠. 시민들이 3개월간 안락사를 막아주면, 그 사이에 입양자 혹은 임보처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33명의 시민을 모집합니다. 위기의 강아지를 3개월만 안아주세요.”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어요. ‘한 마리도 아니고 33마리를 한 번에 구조한다고?’ ‘이후 입양은 어떻게 보낼래?’ ‘임보자와 강아지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할래?’ 유기견 임시보호 프로젝트는 수년 전 한 지방자치단체와 동물보호단체연합 사이에서 논의됐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좌초했습니다.

기획이 성공하려면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 성실한 임보자를 모으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지원자 70명 가운데 33명을 추리기 위해 한 달간 밤낮없이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어요. 임시보호 가정이 개들의 문제행동을 호소하면 함께 고민하고 해결했죠. 잦은 짖음을 해결하는 방법부터 배변 훈련과 사회화교육 등의 요령을 전수했습니다. 반려동물 행동교정사를 섭외해 필요한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가정방문 상담을 제공하고 실시간으로 조언을 했습니다.

삶을 갈아 넣은 헌신 덕분일까요. 그의 무모한 도전은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33마리 전부 3개월 임보를 마치는 해피엔딩을 맞이했습니다. 게다가 33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입양에 성공하거나 입양을 앞두고 있어요. 다들 기적이라 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뚱이 아저씨의 노림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함께 살면 미운 정 고운 정 든다고, 대부분의 입양은 임보자들이 했거든요. 33마리를 임보 보낼 때 이런 결과를 기대한 거죠.

성공을 발판 삼아 팅커벨 프로젝트의 단기임보 체험은 시즌2를 맞이했습니다. 유기견의 평생을 안아줄 수는 없지만 3개월 단기 임시보호에 도전하고 싶다면 포털 사이트에서 ‘팅커벨 프로젝트’를 검색해주세요.

“매순간 행복했어”…70일간의 일기
모찌가 임보 가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팅커벨 프로젝트 제공

하얀 찹쌀떡처럼 앙증맞은 백구의 이름은 모찌입니다. 모찌는 33마리 가운데 막내둥이인데, 유일하게 가족을 만나지 못한 아쉬운 아이에요.

모찌의 임보자 최윤미(39)씨는 남편이 직업군인이라 자주 이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모찌를 입양할 수 없었죠. 윤미씨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모찌는 참 순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혹여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할까 봐 미안하다”며 울먹였습니다. 울지 마세요. 윤미씨의 임보 덕분에 모찌는 소중한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까요.

윤미씨 가족은 팅커벨 프로젝트 인터넷 카페에 매일 모찌의 임보일기를 썼습니다. 70일의 기록에는 생애 첫 유기견을 품에 안은 설렘과 사랑이 가득한데요. 폭풍 성장하는 모찌의 하루하루를 살펴보겠습니다.

-1일차: 모찌가 집에 도착했어요! ^^

-7일차: 첫 산책 날! 예방접종을 못 해 안고 다녔어요. 새소리, 사람 소리에 귀가 쫑긋하네요.

-17일차: 지난주보다 1kg이 늘어 3.9kg이 된 모찌!! 요즘 밥을 잘 먹는다 싶더니^^.

-25일차: 요즘은 코 골면서 잘 자네요.

-30일차: 두 다리가 덜덜덜… 계단 오르기, 드디어 성공했어요. 기특한 우리 모찌~!!

-50일차: 산책줄을 채우자마자 현관에서 계속 기다리네요.

-58일차: 앞니가 빠졌어요~ 모찌~ 유치 빠진 거 축하해~!

그리고 다가온 이별의 순간. 모찌가 임보자의 품에서 위탁처로 떠난 마지막 날의 기록이에요.

임보 가기 전,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생후 2개월 무렵의 모찌. 팅커벨 프로젝트 제공

-70일차: 모찌야. 입양센터에서 갑자기 많은 친구가 생겨서 혼란스럽지? 그동안 너무 고맙고 정말 네가 있어 매 순간 그냥 다 좋았어. 더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었는데, 이별은 너무나 슬프고 어려운 일이구나. 모찌는요. 참 순하고 활발한 아이예요. 강아지와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짖지 않고 잘 놀아요. 엄마가 늦잠을 자면 곁에 와서 지긋이 쳐다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좋은 가족을 만나 남은 견생 동안 꽃길 걷기를 기도할게. 모찌야.

국민일보는 지난달 26일 경기도 양주 위탁보호처에서 모찌를 만났어요. 성격이 형성되는 개린이(개+어린이를 뜻하는 인터넷 유행어) 시절, 사랑을 듬뿍 받은 덕분일까요. 3살 어린이가 건네는 간식도 얌전히 받아먹을 만큼 사회성이 훌륭했습니다. 취재진이 반가운지 식빵 같은 궁둥이를 덩실덩실 흔들면서 산책하는 모찌, ‘왕 크니까 왕 귀엽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백구랍니다.

백구 모찌의 가족을 기다립니다
-생후 8개월, 중성화 암컷
-진돗개와 리트리버 믹스견
-체중 17kg, 다 자라면 20kg 예상
-간식보다 장난감을 좋아함. 동물과 사람에게 사회성이 뛰어남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tinkerbell0102@hanmail.net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양주=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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