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교회-보시기에 좋았더라] 매월 셋째 주일 오후예배 대신 마을 청소… 지역과 지구를 화평케 하다

입력 2021-06-02 03:04
고병호 발안반석교회 목사가 지난 19일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교회 입구에서 '지화자의 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성=강민석 선임기자

매달 셋째 주일은 ‘지화자의 날’이다. ‘지구를 화평케 하는 자’ 또는 ‘지역 사회를 화평케 하는 자’란 뜻이다. 주일 오후 2시 찬양예배로 교회에 모이는 대신 성도들은 흩어져 각자 집 근처 거리에서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다. 삶이 곧 예배임을 자각하는 한편 탄소 중립과 제로 웨이스트가 강조되는 시대에 가정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일정 구간을 청소한 성도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교회 밴드로 보낸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데 익숙하지만, 교회 안 봉사와 섬김의 역동성을 위해 인증 사진을 모으고 마일리지를 기록한다. 교회는 마을 청소에 참여한 횟수에 따라 성도들 가정에 부상으로 쓰레기봉투를 제공한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소정의 금액을 교회는 이렇게 나눴다.

매월 셋째 주일 오후예배 대신 흩어져 진행하는 마을 청소에 동참한 성도들. 화성=강민석 선임기자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방축리에 있는 발안반석교회(고병호 목사)는 지난 3월부터 ‘지화자의 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교회가 처음부터 대규모 교육과 프로젝트를 추진하긴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모이는 것조차 힘든 이때 각자 흩어져서 진행하는 마을 청소는 첫발을 떼는 데 더없이 좋은 아이디어다.

지난 19일 교회 1층에서 만난 고병호(57) 목사는 지화자의 날 입간판부터 소개했다. 마을 청소하기, 전기사용 줄이기, 재활용하기, 음식물 남기지 않기, 종량제 봉투 사용하기, 일회용품 줄이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차 사용 줄이기 등이 아이콘으로 새겨져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꼭 맞는 성도들의 탄소감축 생활습관들의 목록이다. 고 목사는 이를 매달 점검표 형태로 만들어 성도들과 나누고 실천 여부를 스스로 점검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빈자리를 채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채우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채우고 그 영광을 교회 밖으로 흘려보내는 교회를 꿈꿉니다. 향남지구 신도시 외곽에 있는 교회로 젊은 성도가 많이 늘었지만, 과거 농촌의 모습도 남아 있습니다. 기복 신앙이 강했던 과거에서 탈피해 하나님 은혜를 교회 밖으로 나누고자 공적 사역을 강조합니다.”

마을 청소는 2018년 처음 함께 모여 하는 형태로 시작했다. 지난해 초엔 코로나19로 마을 공동 청소를 중단했으나 지난해 9월엔 고 목사를 중심으로 교역자들만 매주 목요일 오전 모여 쓰레기를 줍는 것으로 부활시켰고, 성도들은 매달 셋째 주일 모이는 대신 흩어져 각자 하는 청소로 동참한다. 고 목사는 “전도의 도구나 부흥의 수단으로 삼지 않기 위해 교회를 알리는 현수막이나 어깨띠를 쓰지 않고 섬김의 하나로 조용히 활동한다”면서 “교회의 다음세대 비중이 높은 편인데 지화자의 날에 참여한 아이들이 ‘우리 교회 참 좋다’고 말할 때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

발안반석교회 전경. 발안반석교회 제공

발안반석교회가 지구와 지역을 화평케 하자고 나서기까지는 꾸준한 공감대 형성 작업이 필요했다. 교회는 2015년부터 생활 속 신앙 훈련을 시작했고 고넬료 학교를 개설해 일상의 영성 선교를 실천했으며 7~8월에는 에너지 절약 운동도 병행했다. ‘마을을 교회로, 교회를 마을로’라는 정신으로 자녀들과 함께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강조한 결과, 오늘날 지화자 프로젝트로까지 발전했다.

고 목사는 “성도들은 논리적으로 옳게 들리더라도 ‘내가 싫으면 싫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걸 보듬으면서 늦더라도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이루며 서서히 지평을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거창하고 복잡한 녹색교회 프로젝트는 아니더라도 마을에서 누구나 쉽게 동참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 목사는 “교회 직제인 사회봉사부를 중심으로 현장의 필요에 따라 지화자의 날 확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