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감정이 더 좋을까. 평화로운 순간이 더 좋을까. 아니면 행복해져야 평화로워질까. 나에게 행복이란 감정은 1초보다도 짧은 순간의 감정이다. 그야말로 찰나다. 오래 지속된 적이 없다. 하지만 남들은 나에게 늘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감정을 강요한다. 여행이 귀해진 이 시국에 해외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난 행복해지려고 목숨까지 걸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책임감 때문에 온 것이다. 물론 이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독차지하는 건 행복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행복은 별개이며 그다지 평화롭지도 않다. 다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계속 시를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두 번째 시집을 무조건 부다페스트에서 쓰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면서 다음 시집을 기다려주는 독자가 생겨났고, 원고를 기다려주는 출판사가 생겨났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봉쇄된 국가를 뚫고 들어가야만 했다. 목숨도 걸어야 했다. 그래서 행복이나 평화의 기분보다는 다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된다. 나는 타고난 집순이 체질이라서 방구석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행복과 가까워진다. 하지만 편한 것만 하면서 지내면 시가 써지지 않는다.
난 행복한 감정과 평화로운 순간보다는 다행이라는 기분을 더 선호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종종 두통을 동반해야 하고,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고, 자신에게 금전적 투자도 많이 해야 하지만 만족스러운 작품을 남길 수 있기에 다행스러워진다. 가만히 앉아서 행복하거나 평화로울 수 있는 시간은 짧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감은 장기적이다. 나를 찾아주고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를 다행이라고 여기며, 나는 행복으로부터 초연한 사람이 되기에 얼떨결에 평화로워진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