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살기 좋아 ‘제일 강정’이라 불리던 제주의 작은 어촌마을. 2007년 국방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예고한 이후 대립과 반목만 오가던 서귀포 강정마을에 마침내 상생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뭐라도 세워져야 소득이 는다”고, 다른 쪽에선 “해군기지는 평화와 생태의 섬 제주에 결코 맞지 않는다”며 맞서온 지 14년 만이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꿈쩍하지 않던 주민들이 먼저 화해의 손을 건넨 것이다.
31일 오전 서귀포시 강정 크루즈터미널에서는 ‘강정마을의 완전한 갈등 해결을 위한 제주도·제주도의회·강정마을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이 열렸다. 도와 의회는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벌어진 과오를 사과하고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원희룡 지사는 선언식에서 “(해군기지) 입지선정과 건설과정에 도정이 불공정하게 개입했고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치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됐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도정의 과오를 이해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용단을 내려준 마을 주민들께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좌남수 도의회 의장도 2009년 도의회가 해군기지 건설 지원을 위해 절대보전지역 변경 동의안과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사과했다.
마을회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은 “더 없이 평화롭던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분열이 시작됐다”며 “삶의 터전을 지키려던 많은 주민이 범법자가 됐고 고통은 남았다”고 했다. 이어 “아픈 역사는 다음 세대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지만, 뿌리 깊은 갈등과 반목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강정마을은 제주에선 드물게 논농사를 짓는 농촌으로, 강정천과 바다가 만나는 길목에 자리해 예로부터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혔다. 그러나 2007년 국방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하면서 공동체는 쪼개졌다. 2009년 건설사업 실시계획이 승인 고시된 이후 반대 주민과 정부부처 간 소송이 잇따랐다.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이뤄질 만큼 갈등은 극심했다. 소송에서 이긴 정부가 반대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수백명에게 4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지질학적 가치가 큰 강정 앞바다의 용암너럭바위가 폭파되는 등 환경파괴 논란도 거세게 일었다.
이번 선언식은 마을회가 자발적으로 요청해 마련됐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제주지사, 도의회 의장, 해군참모총장의 사과가 이어졌지만 마을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와 강정마을회가 화해를 전제로 한 상생협약 협의를 시작, 지난달 250억원 규모의 공동체 회복지원기금 조성을 골자로 한 최종 협약안을 마련하면서 화해의 물꼬가 터졌다.
한편 선언식 현장에서는 해군기지 추진과정에서 자행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우선이라는 일부 주민의 반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