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예수님께 비유로 배우는 기도

입력 2021-06-02 03:03

누가복음 11장에는 비유를 통해 기도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온다. 비유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사람은 여행 중 예고 없이 밤늦게 친구 집을 찾아간 사람이다. ‘웬 민폐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낮에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여행을 주로 해지는 시간에 시작하기에, 목적지에 늦은 밤 도착하는 일은 허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친구를 맞이하는 집주인으로선 곤혹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집에 아무것도 없는데.’ 한계 상황에 부닥쳤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기도 제목은 첫 번째 사람처럼 찾아온다.

우리는 사건 사고 속 한계를 느끼고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이런 기도 제목은 우리에게 괴로움도 주지만 한편 진실한 기도를 드리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두 번째 사람은 한밤중에 친구를 맞이한 집주인이다. 그는 친구를 집으로 들이고 그에게 요깃거리를 대접하려고 한다. 늦은 밤 자신을 찾아온 나그네를 외면하지 않고 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주인에게는 음식이 없었다. 그래서 늦은 밤 다른 친구를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떡 세 덩이를 꾸어 달라고 한다.

이 두 번째 사람은 간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기도는 한계 상황에서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며, 기도를 통해 하늘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특별히 그 기도가 하나님 뜻에 맞는다면 더욱 담대히 두드릴 수 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끈질김이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다니엘 10장에는 다니엘의 기도가 첫날에 응답되었으나 그 결과가 하나님의 대적자를 상징하는 바사 왕국의 군주를 뚫고 21일 만에 도착한 환상이 기록돼 있다. 기도를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정확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비유에 등장하는 세 번째 사람은 문을 열고 떡 세 덩이를 내어준다. 캄캄한 상태에서 빗장이 걸린 문을 다시 여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밤에 웬 난리냐 불평할 만하다. 그러나 그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 세 번째 사람은 좋으신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것이 ‘예스’(Yes)든, ‘노’(No)든, ‘웨이트’(Wait)든 꼭 응답해 주신다. ‘정말 응답하실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기도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아주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속임수를 쓰지 않으신다. 가장 정확한 것을 주신다. 또 악한 것을 주지 않으신다. 비록 우리의 한계로 깨닫지 못할지언정 하나님은 늘 선한 것을 바라며 기도하는 자에게 주신다.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 그의 자녀에게 무엇을 아끼겠는가.

한국교회와 미주 한인교회에서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 이전보다 기도해야 할 제목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과거보다 오히려 더한 한계 상황이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 왜 다른 것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가. 기도할 수 있는데,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단지 말을 못 한다고 해서 벙어리가 아니다. 기도를 못 하는 사람이 진짜 벙어리다. 이제 기도의 열정을 회복하자. 기도의 기쁨을 찾자.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 생명의 강물을 온 세계에 흐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미국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