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DC 수익률, DB의 2.5배… 직장인 DC형 갈아타기 바람

입력 2021-06-01 04:04

자산 양극화로 재테크가 필수인 시대가 도래하면서 ‘묻어두기’에 급급했던 퇴직연금에도 직장인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퇴직연금 시장은 회사가 운영하는 확정급여형(DB)이 전체 적립금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대세를 차지했다. 그러나 원금보장을 위해 예·적금에만 퇴직금을 넣는 탓에 수익률은 연간 1~3%에 불과했다.

그랬던 퇴직연금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증시 활황과 타깃데이트펀드(TDF) 같은 상품 다각화, 로보 및 인공지능(AI) 등 보조 수단이 도입되면서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 상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분기 DC형 수익률이 DB형의 2.5배를 넘어서면서 중견·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DB형에서 DC형으로 변경하는 경우도 확대되고 있다.

벌어지는 DB·DC 수익률 격차

40대 직장인 A씨는 DC형에 가입해 있었으나 원금 손실을 우려해 그동안 예·적금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주거래은행 퇴직연금센터로부터 “그렇게 놔두면 안된다. 연금 운용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며 “처음 차이는 미미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니 앱으로 직접 운용해보라”는 전화를 받고 처음 은행 앱을 통해 계좌에 들어갔다.

금융상품에 별다른 지식이 없었지만 일단 연간 수익률 1%대에 머물던 예·적금을 해지했다. 은행 앱에서 추천했던 TDF에 일부를 넣었고, 나머지는 채권과 펀드로 돌렸다. TDF는 은퇴 시기에 맞춰 남은 기간 동안 채권과 주식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포트폴리오다. 버튼 몇번만 눌렀을 뿐인게 결과는 지난 10여년과 판이하게 달랐다. 31일 기준 퇴직연금의 1년 공시 수익률이 15.56%, 잔액 누적 수익률은 20.48%를 기록했다.

A씨는 “직장인 중에 퇴직연금에 관심을 가지고 굴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당연히 예·적금에만 묻어두었는데 은행 앱에서 이렇게 많은 상품을 사고 팔 수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상품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돼있어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며 “기대 이상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고 말했다.

A씨가 가입한 은행 가입자의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1년 기준)은 3.76%에 불과하다. 대부분 고객이 예·적금에 자동으로 쌓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이들보다 4배 이상 수익률을 올렸지만 로보 포트폴리오(시장상황을 수시로 고객에게 전달해 탄력적으로 상품을 운용토록 하는 상품)의 수익률 23.55%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달 초 기존 상품은 유지하되 다음 회사입금분부터 로보 포트폴리오를 매수하도록 했다. A씨는 “기존 포트폴리오 중 10% 후반~20%대 초반 수익률을 내는 상품이 있어 해지하기 아까웠다”며 “아직 정년까지 오랜 시간이 남은 만큼 일단 추후 입금분만 로보 포트폴리오를 매수하도록 조정했다”고 말했다.

DB형과 DC형의 희비는 올 1분기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금융감독원 연금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DC형 수익률은 6.30%로 DB형(2.46%)의 2.5배 이상을 기록했다. 퇴직연금을 목돈으로 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격차다. 업권별로 보면 증권사 DC형이 13.25%로 가장 수익률이 높았다. DB형은 4.95%에 그쳤다. 은행(지방은행 포함)은 DC형 9.43%, DB형 3.84% 수익률을 보였고 보험사 수익률은 DC형 9.00%, DB형 3.98%였다.

증권사 수익률이 가장 높은 건 상장지수펀드(ETF) 등 일부 상품 차이와 투자자 마인드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자는 “아무래도 은행에 퇴직연금을 맡기는 투자자는 보수적이다보니 원금보장상품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보니 전체 예·적금 가입자가 수익률 평균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증권사에 퇴직연금을 가입한 경우는 기본적으로 투자에 관심이 높은 분들”이라며 “여기에 ETF 등 일부 시중은행이 취급하지 못하는 상품의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DB형에서 DC형으로, 직장인 관심 변화

금융기관들은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조만간 퇴직연금 상품에 ETF를 포함시킬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증권사나 은행의 상품 포트폴리오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ETF 같은 경우엔 은행이 그동안 출시하지 못했다”며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조만간 퇴직연금 운용 상품으로 편입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DB형에서 DC형으로 옮겨가는 회사나 직장인도 늘어나고 있다. 보통 대기업은 DB DC형에 모두 가입해있지만 중견 중소기업은 둘 중 하나에만 가입한 경우가 많다.

다른 시중은행 담당자는 “과거에는 원금 보존을 위해 DB형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엔 DC형으로 바꾸는 중견 중소기업이 많다”며 “또 젊은 직장인 관심이 늘어나면서 회사에 DC형으로 전환을 요청하거나, 임금피크제 해당자도 DC형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지난해부터 DC형 수익률이 급상승하면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임금상승률이 높다면 DB형이 유리할 수 있지만 임금상승률이 정체됐거나 예 적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원한다면 DC형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비교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려면 회사에 요청하면 된다. 그러나 DC형으로 한번 옮기면 DB형으로 돌아올 수 없는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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