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초심, 시류 따라 동력 잃고… 새 기관 만들어 이합집산

입력 2021-06-01 03:0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설립순).

교회연합기관의 면면이다. 교회연합기관은 전통과 신학이 서로 다른 교단들이 모여 교회와 사회와의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합체다. 평화통일을 비롯해 정치·사회 갈등 조정을 위해 교회의 목소리를 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한기총이 자중지란으로 분열하기 전까지 NCCK와 한기총은 교회연합기관의 양대산맥이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연합기관은 NCCK다. 1924년 9월 24일 새문안교회에서 출범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 뿌리를 둔 NCCK는 97년 역사를 지닌 교회연합기관의 맏형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과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구세군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한국정교회대교구 기독교한국루터회 등 9개 교단이 회원이다.

NCCK는 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목적으로 추진된 3선 개헌 반대 성명 발표 등 굵직한 정치 이슈에 교회의 목소리를 냈다. 74년 인권위원회를 발족한 뒤 민주화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협력해 전 세계 교회가 한국의 민주화에 관심을 두도록 여론전도 펼쳤다. 87년 6·10민주항쟁 때도 투쟁의 전면에 서는 동시에 WCC의 재정 후원도 끌어냈다. 77년 부활절에 천주교와 공동번역성서를 출판하면서 천주교와의 교류도 확대했다.

북한교회와의 교류도 이어오고 있다. 84년 WCC 주최로 일본 도잔소에서 열린 ‘동북아평화·정의에 관한 국제회의(도잔소회의)’를 준비하는 전 과정에 참여했다. 2년 뒤인 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교회의 역사적인 첫 만남 이후 NCCK는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위원장 강명철 목사)과 만남을 갖고 있다.

민주화와 교회연합·평화통일 운동 등 우리 사회가 성숙하는 데 이바지한 NCCK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활동이 위축됐다. 민주화와 교회의 보수화 속에서 진보적 정체성을 지닌 NCCK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

NCCK 총무를 지낸 김영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3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NCCK는 한국교회 역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교회연합기관으로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큰 공헌을 했고 남북교회 교류 역사의 산증인”이라며 “사회와 교계가 급변하면서 NCCK의 활동이 주춤해졌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벽을 넘어 교회 연합을 통한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모두와 협력하며 정체성도 강화할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 새 미래를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일부 보수 성향 교단과 교회들은 3선 개헌 때 NCCK와 다른 입장을 냈다. 이들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3선 개헌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새로운 연합체 조직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이후 이들 교회가 빠르게 부흥하면서 연합체 구성을 위한 동력이 생겼다. 보수 교단 연합체인 한기총은 89년 출범했다. 한기총에는 예장통합과 합동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부분 교단이 회원으로 참여해 규모 면에서 NCCK를 압도했다. 예장통합은 NCCK와 한기총에 모두 가입했다.

한기총은 NCCK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면서 보수 교단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며 균형을 강조했고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운동의 전면에 서면서 보수 세력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부터 커진 내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이듬해 분열하면서 과거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다. 당시 한기총은 금권선거와 이단 연루 논란 등이 불거졌다. 심각한 내부 갈등 중 한기총 창립을 주도했던 예장통합을 시작으로 주요 교단의 탈퇴가 이어졌다. 이들 교단은 2012년 한교연으로 헤쳐 모였다. 이때부터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이라는 지위를 상실했다.

한교총은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을 끌어낸다는 목적 아래 2017년 출범했다. 국내 주요 교단들이 대거 참여한 한교총은 현재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가장 큰 규모의 연합기관이 됐다.

NCCK 회장과 한기총 대표회장을 모두 역임한 박종순 목사는 “한국교회는 교단이든, 연합단체든 만드는 데는 1등이지만 설립 정신을 망각하고 망가지는 데도 1등”이라며 “NCCK가 운동성을 잃고 한기총이 망가진 것도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연합기관들이 살기 위해서는 본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한국교회 전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면 된다”며 “당장 기구 통합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다만 교회의 하나 된 목소리를 내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사업을 추진하며 접점을 넓히는 게 지금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화합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