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4%로 올라섰다. 역대급 수출 실적에 백신 접종이 순항한다면 하반기 경기 회복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안정 목표치 2%에 바짝 다가선 물가상승률 전망에 시장은 금리 인상 대응 채비에 돌입했다. 4%대 성장이 기저효과인지, 막대한 재정 지출로 떠받친 모래 위의 성인지, 우리 경제의 저력이 제대로 실력 발휘한 결과인지는 찬찬히 따져봐야 할 일이나 수치로만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149개국 중 62위. 거시경제지표와는 사뭇 다른, 세계행복보고서상 우리나라의 2020년 행복 순위다. 최근 5년간 계속 낮아지고 있고, 3년 평균치 기준이니 딱히 코로나19 탓도 아니다. 소득과 기대수명의 높은 순위가 삶에서의 선택의 자유 129위, 사회적 지지 97위, 관용 94위로 침식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표에서는 사회적 지지 관계망 순위가 40개국 중 최하위다. 2011년 기준 갈등요인지수는 24개국 중 4위, 갈등관리지수는 34개국 중 27위였다. 한마디로 신뢰는 부족하고 사회적 갈등이 심하면서 선택의 제약이 많은 사회다.
국회의원 및 관리직 비율, 경제활동 참가율, 임금 등에서의 남녀 간 격차를 측정한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 성적도 153개국 중 108위다. 성별 임금 격차는 36.7%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19%로, 여성할당제가 적용되는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12%가 안 돼 OECD 평균 30.1%, 189개국 평균 24.1%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지표들은 왜 부유한 만큼 행복하지 않은지, 불안과 분노와 외로움은 왜 이리 큰지, 정치권까지 번진 젠더 갈등의 뿌리는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실체를 보여준다.
사회적 갈등은 불편하다.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갈등 요인 자체를 제거하는 방법이 역사적으로 종종 동원됐다. 하지만 그 결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행복추구권이 훼손됐고 왕성한 다양성에서만 가능한 융합과 혁신은 싹이 잘렸다. 다양한 삶의 형태, 생각의 존중이라는 기본 원칙과 갈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대하는 사회의 역량, 즉 투명성, 소통, 신뢰와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이 높고 갈등 관리가 잘된 국가가 성장률도 높고 행복한 사회라는 연구, 인종과 문화다양성이 높은 조직이 성과도 높다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 사례들에 해당되지 않는다.
삶의 질과 괴리된 양적 성장의 후유증을 겪으면서도 오랜만에 맛보는 경제 성장의 단맛에 지뢰밭 같은 삶의 질 문제는 또다시 뒷전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경제 성장이 삶의 질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지금이 삶의 질 문제를 제대로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선거철이 되니 취업난과 부동산 가격 폭등이 낳은 수저계급론, 페미니즘 논쟁과 세대 간 갈등, 지역주의에 각양각색의 이름표를 단 성장 담론과 복지 담론까지 합종연횡 뒤엉켜 어지럽다. 행여 갈등을 부추겨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4% 경제 성장이 삶에서의 자유로운 선택, 일자리와 먹거리, 사고와 실업과 질병의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신뢰와 협력으로 연결된 따뜻한 사회를 품어내는 일을 훼방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를 절벽 아래로 떠미는 범죄 행위와 다름없다.
4% 경제 성장에 방심하지 말고 행복 순위 62위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낙수 효과와 분수 효과를 한데 엮어 포용과 번영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야 할 운명의 시간이다.
신자은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