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퇴냐 지켜보자냐… ‘미운털’ 고검장들 檢 인사 폭풍전야

입력 2021-05-31 00:05
연합뉴스

대규모 검찰 인사를 앞둔 지난 주말 일부 고검장에게는 ‘결단’을 만류하는 분위기가 전달됐다고 한다. “마음을 정리하더라도 인사 이후로 미루면 어떻겠느냐”는 식의 간언마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연 고검장의 보직을 그간 지검장급이 맡던 고검 차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등으로 실제 ‘강등’할 것인지 정부의 태도를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유례없는 좌천이 실제 확인된다면 검찰 역사에 기록될 만하겠지만 당사자에게는 괴로운 일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인사 적체를 언급하고 법무부 검찰인사위원회가 대검검사(고검장·지검장)급 탄력적 인사를 예고한 지난 27일 이후 검찰 고위직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적체와 탄력이 사실상 고검장들을 압박한 메시지라는 해석에는 검찰 안팎에 이견이 없었다. “알아서 할 일인데 격앙시켰다”는 아쉬움 섞인 반응도 나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3기)로서 1년여간 검찰 조직을 이끌어온 고검장 가운데 애초부터 신임 총장 취임을 공직 마무리 시점으로 잡던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 내 고호봉 기수의 용퇴가 불가피한 환경인지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현 정부 들어 검사장들의 보직 범위가 줄어든 상태라서 승진 인사를 계획하는 입장에서도 고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부장검사는 “23기 선배들이 많이 남아 있긴 하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 지휘부가 오히려 과거보다 연소화한 상태라며 ‘적체’ 명분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있다. 윤 전 총장이 5기수 후배로 총장에 취임했던 2019년에 이미 큰 폭의 교체가 이뤄졌고, 새 검사장들이 보임한 뒤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고검장들이 지난 1년여간 검찰과 여권의 긴장 국면에서 때로는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는 사실은 ‘미운털’ 해석을 낳고 있다. 한 현직 검사장은 “과오나 책임이 있었다면 이런 망신주기를 이해할 수 있겠다”며 “노골적인 강등 예고는 그저 ‘말 안 들었으니 나가라’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전국 고검장들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가 청구됐던 지난해 11월 “절차와 방식, 내용의 적정성에 의문이 있다”는 합동성명을 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재고를 건의했었다.

고검장들은 지난 3월 여권이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에 대해서도 우려 입장을 밝혔다. 이후 검찰과 여권이 대립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 마무리에도 나름의 역할을 담당했다.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따라 대검찰청 부장회의가 사건을 최종 처리할 때 고검장들이 함께 참석했던 것이다. 마라톤회의 결과 애초 대검 연구관들의 결론처럼 당시 관련자들에 대한 불기소가 결정됐지만 여권은 “한심한 결론”이라고 했다.

이르면 이번 주중 대검검사급부터 시작될 검찰 인사 면면은 더욱 주목받게 됐다. 고검장들의 좌천을 시사한 뒤 발표될 인사 내용이 만일 ‘친정부 챙기기’로 드러난다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법조계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교체 및 고검장 승진 여부, 그간 청와대를 겨냥했던 수사팀장들의 행선지를 예민하게 살피고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들은 김오수 총장 후보자가 강조한 신뢰 회복의 의미를 인사에서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