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이 나오면 집을 보지도 않고 사겠다는 신청이 들어온다. 부동산 업자는 요청 가격을 초과하는 최고액을 요구한다. 대출업자는 더 저렴한 융자 요율과 더 쉬운 조건을 제공해 급등하는 가격을 보상한다.”
최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택매매 형태를 묘사한 가디언 보도다. 이른바 한국의 패닉 영끌 구매 모습을 빼닮았다.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가디언은 지난 28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 둘위치 힐 인근에 매물로 나온 방 2개짜리 주택을 보기 위해 구매 희망자 수십명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구매 희망자 중 한 명인 마이클 부부는 “집 구하기가 ‘헬(지옥)’”이라고 토로했다. 호주 언론은 “부동산 붐으로 젊은 세대들이 가족 출발(결혼 및 출산)을 늦춰 국가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급증하는 직업 불안정과 부동산 가격 급등이 만든 폭풍”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미국 워싱턴DC의 한 교외 지역 방 4개짜리 주택은 매물 등록 72시간 만에 76개 거래신청을 받았는데, 구매 의향자들은 모두 전액 현금 지급 조건을 제시했다고 포브스가 지난 14일 전했다. 전미 부동산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에서 판매된 주택은 평균 5개 입찰 제안을 받았다. 전형적인 판매자 우위 시장이다.
세계 주요국들이 이례적인 주택 가격 폭등 현상을 겪고 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급 불균형이 벌어지고 있다. ‘미친 집값’은 한국만의 일이 아닌 셈이다.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이 주택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가 공통적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부 차이점이 보인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주택 수요 폭증, 주택 공급 시장의 정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급 비용 증가 등이 최근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주택 공급을 틀어막은 정책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널뛰는 세계 집값
부동산 급등과 관련한 주요국 외신 보도에선 최근 ‘버블’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지금의 가격이 거품인지, 곧 꺼질 우려가 있는지 논쟁이 펼쳐질 만큼 오름세가 가팔라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 1분기 OECD 37개 선진국에서 연평균 명목 주택가격 상승은 1990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가속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선 연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두 자릿수에 달했고, 호주 주택가격은 지난 2월 거의 20년 만에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했다.
캐나다 언론은 “지난해 불타오른 주택 시장의 극단적인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거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며 “많은 사람이 입이 벌어질 정도의 입찰 전쟁과 기록적인 주택가격 때문에 캐나다 부동산시장이 지속 불가능할 속도로 가속화됐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최근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영국 평균 주택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0.2% 상승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스톡홀름 브롬바 지역 외곽에는 100만 유로 이하 집이 사라졌다. 5월 둘째주에 1930년대 지어진 부동산 2개가 140만 유로로 매물이 등록됐다. 부동산 가격 추적 회사인 밸류가드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 전역 평균 부동산 가격은 지난 12개월 동안 19% 상승했다.
폴리티코는 "유럽 경제가 코로나19 전염병의 결과로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는데, 그것은 바로 주택가격 거품"이라고 보도했다. 스웨덴 부동산 회사의 파르 군나르손은 "지난 1년간 목격한 것만큼 가격이 빠르게 상승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극단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빚은 풍경
각 나라의 부동산 가격 상승 이유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코로나19'다.
가디언은 가격 상승 원인으로 '지난여름 도입한 인지세(취득세) 감면'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신규 정부 보증' '가정용 주택에 대한 수요 증가'를 꼽았다. 영국 정부는 팬데믹 극복을 위해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행했는데, 그로 인해 주택거래가 줄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50만 파운드 이하 주택 거래 시 취득세 한시적 면제 조치 등을 실시했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정원이 딸린 주택을 선호하는 시민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는 게 부동산 업자들의 분석이다.
폴리티코는 "시민들이 집에 갇혀 식당이나 여행에 돈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생활공간 업그레이드로 옮겨갔다"며 "큰 아파트나 주택에 대한 욕구는 중부 및 북유럽 일부 지역 주택시장 평균 가격을 상승시켰다"고 말했다.
캐나다 부동산협회(CERA)는 "저금리와 밀레니얼 세대 등이 주택 수요를 부채질했다. 캐나다 전역의 주택 재고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감소하고 있고, 수요는 믿을 수 없는 월간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는 더 넓은 독립된 주거 공간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켰고, (재택근무 증가로) 직장·주거 접근성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를 일으켰다"며 "코로나19는 집과 사람의 관계를 바꾸어 놓았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체국 영구주소 변경 제출 가구 자료를 분석해 "팬데믹 이후 대도시에서 교외로의 이주 증가가 본격화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수년간 대도시에서 교외로의 인구 이동이 증가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를 가속했다는 것이다. 뉴욕 맨해튼에 한 명 들어올 때 세 명이 빠져나간 식이다.
반면 주택 공급 속도는 더디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지난 18일 "4월 신규 주택 착공 건수(계절적 요인 포함·연율 조정)가 156만9000건으로 전월 대비 9.5% 하락했다"며 "공급망 약화와 재료비 상승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의 집값 상승도 저금리 효과가 컸다. 다만 공급 부족을 초래한 정책적 원인이 수급 불균형을 심화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 공통 요인은 금리 하락이다. 하지만 한국은 저금리 원인이 60%, 정책 실패가 15%, 나머지는 신규 주택 공급 부족 문제가 겹쳐 있다"며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과도한 시장 규제가 매물을 더 희소하게 만들었다는 게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저금리는 공통적이지만 지역적 특색은 수요와 공급 문제인데, 수요를 충족할 만큼 공급이 됐으면 폭이 줄었을 수 있겠지만 한국은 그게 약했다"며 "지난 3~4년간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하다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간 조정은 힘들 것' 관측 우세
주요국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이 조기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회의적이었다.
가디언은 "부동산 붐이 계속되면서 올해 영국 주택 판매 가치가 46%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올해 영국 부동산 시장은 2007년 이후 가장 바쁜 해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CERA는 올해 캐나다 평균 주택가격이 연간 16.5%, 주택 판매량은 27.3%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CERA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난해 사상 최저치에 근접했고, 현재 물가 불안이 표면화되고 있지만, 캐나다 은행은 2022년까지 저금리를 유지하길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현재 주택시장 추세에 따라 올해 기록적인 거래가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주택가격 상승은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호주 중앙은행은 "평균 주택비용이 1990년 가구 평균 가처분소득의 약 2.5배"라고 밝혔다. 호주 부동산 정보 검색 업체 도메인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주택가격은 올해 임금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디언은 "부동산 거품은 젊은 세대와 노년층, 부자와 가난한 사람, 소유주와 세입자 사이 심각한 불평등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의 반전은 금리 인상과 맞물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폴리티코는 "걱정거리는 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야 할 때 주택 구매자가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며 "그들이 지출을 통제한다면 경제에 타격을 주고, 그들이 집을 팔아야 한다면 거품이 드러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웅빈 임송수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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