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예배입니다. 오븐에 갓 구운 감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가 뜨거워서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듯이, 정상적인 대면 예배를 드리자니 사회적 거리두기 위반이 될 수도 있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자니 교인들의 신앙을 담보할 수도 없어서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지혜를 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 내에서 아주 열광하거나 완전히 무시되곤 하는데 우리에게 예배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요한계시록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끝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배는 천상에서의 예배지만, 지상에서 참고할 만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배가 사탄을 상징하는 용에게도 쓰였고(계 13:4) 하나님에게도 쓰였습니다.(계 15:4)
우리는 누구에게 예배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13절에서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께 4가지 송영 즉,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 예수님입니다. 용은 우리가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어둠의 권세이자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속이는 세력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이 물질을 신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쾌락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느라 신앙을 내팽개쳤습니다. 여가가 신앙보다 우선적 가치가 됐습니다. 우리는 용을 버리고 어린 양을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예배해야 할까요. 본문 9~10절을 봅시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서 ‘사다’라는 말은 ‘속량하다’로, 시장에서 주인이 노예를 사듯이 예수님이 죄의 노예였던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서 해방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12개월 할부’가 아니라 ‘일시불’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배해야 할까요. 본문 14절에서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네 생물은 모든 피조물을, 24장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배의 대상에게 겸손과 존경의 표시로 ‘엎드려’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성을 다해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도 있지만, 예배 시간이 지나 허겁지겁 들어오거나, 피곤함에 지쳐 꾸벅꾸벅 졸거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천상에서의 예배는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엎드려서 예배드리는데,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실패한다면 천국에 가서도 고문당하는 것처럼 괴로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철저히 예배드려야 천국에 가서도 자연스럽게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심장 박동과 같습니다. 심장에서 펌프질해야 동맥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내보내듯이 예배를 드려야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고, 정맥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들여보내듯이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상처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람이 심장 박동을 해야 살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드려야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예배에 승리합시다.
여성구 포항창대교회 목사
◇포항창대교회는 40~50대 교인들이 ‘교육하고 선교하고 치유하는 교회’라는 비전으로 역동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