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예민해 늘 고민과 생각이 많았다. 따뜻한 아버지, 헌신적인 어머니였지만 화를 내실 때면 전혀 다른 사람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가식이고 믿을 사람이 없어. 나를 이용하다가 마지막엔 배신하겠지.’ 그렇게 혼자만의 울타리를 치고 지내다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체력과 성적, 자신감까지 바닥을 치며 점점 자신을 깊은 골방에 가두었다. ‘내가 표정을 정상으로 하고 있나. 저 사람이 내게 해를 가하면 어떻게 하지.’ 오만 가지 생각에 외출도 하지 못했고 급기야 걷기도 힘들어졌다.
이런 내가 싫어 전문상담 센터의 진료, 기 운동과 요가, 격투기까지 하며 노력했지만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 열등감 등 답답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단 하루라도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칠 때 부족한 내 모습까지 사랑해 주며 챙겨주는 사람을 만났다. 여자친구의 꾸준한 사랑과 관심으로 문제가 하나하나 풀리며 안정을 찾아갔다. 어느 날 친구는 ‘나는 계속 만나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며 함께 교회에 가자고 해 따라 나섰다.
예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보니 교회의 모든 것이 무척 불편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의 주인이 돼 주셨다’라는 목사님 말씀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부활하심으로? 나의 주인이라고?’ 죽고 부활하셨다면 하나님이 계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인데 정말 이것만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새벽을 깨우고 간증을 쓰고 교제도 했지만 부활은 물론 역사까지 의심하게 되니 혼란스럽기만 했다. ‘왜, 나는 다른 분들처럼 확신과 감격이 없고 답답하지.’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는 말씀이 가슴에 떨어졌다.
‘모든 사람? 그럼 나도? 부활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증거를 주신 것이 확실해.’ 나를 가렸던 안개가 한 순간에 걷혔다. 그리고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목숨을 걸고 달려 나가는 모습에서 부활이 내게도 실제가 됐다. ‘영준아. 네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시어 너의 주인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너의 주인이 되었다.’ 마음 속에 메아리치듯 생생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그동안 제가 주인을 무시하고 제 느낌과 감정으로 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만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예수님께 모든 삶을 맡기니 세상이 달라졌다. 나를 엄습하던 두려움이 떠나가고 몸도 가뿐해졌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니 주님의 사랑으로 한 아이라도 더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학교에 기독교 동아리를 만들어 복음을 전한다.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삶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고민이 많아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언제나 진짜를 붙들어야 한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곧 오신다고 하신다. 그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된다. 예수님을 보고 사귐을 가질수록 불필요한 생각들은 알아서 가지가 쳐진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는다. 복잡한 생각으로 참 힘들게 살았지만 오늘도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지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혼구원을 위해 달려간다.
권영준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