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사진은 대표적인 걸로 5개만 추리시죠. 가장 대중적이고 서빙도 빠른 전(煎) 메뉴가 좋겠어요.”
손태호(아래 사진) 컨설턴트의 말에 장연정(54) 대표가 물끄러미 가게 벽을 바라봤다. 벽에는 주력 메뉴인 녹두전 깻잎전과 함께 골뱅이소면 두부김치 같은 곁다리 메뉴도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모자이크처럼 걸려 있었다. 손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전집이니까 간판도 너무 화려하지 않게, 예스러운 느낌으로 갑시다.” 장 대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TV 예능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같지만 그보다 10년 앞서 2008년 시작된 ‘원조 골목식당’의 컨설팅 현장이다.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자영업 컨설팅’은 백씨 못지않은 컨설턴트들이 식당을 ‘통째로’ 바꾸며 상권을 개척한다. 지난 20일 손씨와 함께 서울 성동구 금남시장의 전집 ‘초가랑’을 찾아 가게를 180도 변화시키는 컨설팅 과정을 지켜봤다.
시작은 인테리어…시인·공간성의 힘
손씨의 첫 번째 ‘대수술’은 인테리어에서 시작됐다. 그는 “좁은 가게에서 공간성을 확보하려면 사방에 어지럽게 배치돼 있는 메뉴판과 액자 등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고 했다. 손씨 지시에 따라 벽면을 꽉 채우고 있던 메뉴판은 전부 사라지고 단 한 장의 깔끔하고 큼지막한 메뉴판이 자리를 대신했다. 가수 성시경 신수아, 프로골퍼 송보배 등 장 대표가 자랑으로 여기던 유명인 사인들은 메뉴판 반대 벽에 가지런히 정리됐다.
과거 메뉴판에 덕지덕지 도배됐던 요리 사진도 새로 만든 메뉴판에선 과감히 없앴다. 손씨는 “효율적으로 영업하기 위해서는 모든 메뉴에 신경 쓰기보다는 몇 가지 자신 있는 주력 메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표 메뉴에만 요리 사진을 넣어 집중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시작된 초가랑 컨설팅은 이날이 세 번째다. 앞서 두 번째 컨설팅에서 손씨는 장 대표에게 신속한 서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3㎡(10평) 규모인 초가랑은 네 팀밖에 수용할 수 없는 작은 공간이어서 손님 회전율을 높여야만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씨는 “빠르게 조리해 제공할 수 있는 음식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며 전 메뉴를 앞장세울 것을 조언했다.
SNS의 힘…배달에도 도전
많은 소상공인이 어려워하는 인터넷·SNS 마케팅의 길을 열어준 것도 손씨였다.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빈대떡 맛집’ 키워드로 올린 소개글 하나가 초가랑에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가져왔다.
컨설팅을 받기 전 초가랑은 ‘나이대가 좀 있는 단골손님이 주로 오던 가게’라고 장 대표는 설명했다. 하지만 손씨의 SNS 홍보가 시작되자 가게를 처음 방문하는 젊은 손님들이 늘었다고 한다. 개업 10여년 만에 젊은 고객들이 몰려오자 신기한 마음에 장 대표는 “어떻게 알고 방문하셨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손님들은 “네이버에서 소개 글을 보고 왔다, SNS에서 유명하다”고 답했다. 장 대표는 “나이가 있어 SNS나 마케팅에 대해 잘 모르고 지내왔는데 손씨가 깔끔하게 잘 진행해주셔서 놀랐다”면서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시작했나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급격히 성장한 ‘배달 장사’에 뛰어들 때도 손씨의 세심한 지도가 있었다. 손씨는 “소규모 점포에서 섣불리 배달하게 되면 홀에 서빙되는 음식과 배달로 나가는 음식 모두 퀄리티가 떨어져 가게 이미지를 망칠 위험이 있다”면서 “시간대를 나눠 상대적으로 덜 바쁜 시간에만, 하나의 배달 업체와 계약해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정 대표는 저녁 피크시간을 제외한 한가한 시간대에, ‘요기요 익스프레스’를 통해 배달을 받으며 10여년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폐업률 줄고 생존율 늘고
컨설팅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해 실시된 컨설팅 이용자 설문에서 응답자의 64%는 컨설팅 진행 후 매출이 증가하거나 유지됐다고 답했다. 컨설팅 이용자의 폐업률은 자영업자 평균(11.7%)보다 2.3% 포인트 낮은 9.4%를 기록했다. 생존율도 업계 평균(64.0%)보다 19.0% 포인트 높은 83.0%로 늘었다.
다만 괄목할 만한 성과에 비해 서비스 이용층이 넓지 않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정민정(66)씨는 “아무래도 자영업자들은 낮에 재료 손질과 영업준비를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장사하느라 바쁘지 않냐”면서 “컨설팅을 받고 싶어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게 고민거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금원 관계자는 28일 “컨설팅 특성상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서금원은 올해 컨설턴트 16명을 추가 모집해 전국 소상공인에 대한 컨설팅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자신이 지원 대상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구체적인 신청 절차는 서금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