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인사 태풍 차원을 넘어 ‘인사 학살’이 벌어질 조짐이다. 그제 열린 법무부 검찰인사위원회에서 고호봉 기수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검사장급 이상 인사를 탄력적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된 걸로 볼 때 6월 초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상된다. ‘탄력적 인사’란 대검 검사급 검사(고검장·검사장)의 경우 고검장급과 검사장급을 구분해 보직 인사를 해왔던 기존 원칙을 바꿔 고검장급을 검사장급 자리에 ‘강등 배치’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수 문화가 강한 검찰 내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 인사를 예고한다. 이 경우 후배 기수를 상관으로 모시는 선배 기수는 모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추미애-윤석열 대립’에서 정권 편에 서지 않았던 전국 고검장들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물러나라는 신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인사 적체 문제가 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사 적체는 뜬금없다. 검찰총장이 문무일(연수원 18기)에서 윤석열(23기)로 바뀔 때 기수가 통상의 1∼2기수도 아닌 5기수나 내려가 22기 이상의 연수원 선배들은 모두 퇴진한 상태다. 이런 상황임에도 인사 적체라고 주장하니 그 말을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현 정권이 임명 강행 수순을 밟는 김오수(20기) 검찰총장 후보자가 취임해도 23∼24기인 고검장들이 관례상 남을 것으로 보이자 인위적 물갈이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택시기사 폭행 논란으로 수사를 받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어제 사의를 전격 표명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새로운 일꾼이 필요하다”는 그의 사의 배경 언급은 고검장들의 용퇴를 압박하는 메시지다. 곧바로 조상철 서울고검장이 현직 고위 간부 중에선 처음으로 “떠날 때가 됐다”며 사표를 냈다. 이런 빈 자리는 친정권 검사들로 채워질 것이다.
중간 간부급(차장·부장검사) 인사도 법무부가 추진 중인 조직개편안과 맞물려 대규모로 단행될 전망이다. 직접수사부서가 없는 지검·지청 형사부의 6대 범죄 수사는 검찰총장 내지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한 게 개편안 골자다. 권력 비리 수사를 제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속내가 담겼다. 대검에서 일선청의 반대 의견을 취합하고 있지만 밀어붙일 기세다. 아울러 현재 정권 관련 수사를 담당하는 차장·부장검사도 대폭 교체하려 할 것이다. 정권이 이를 검찰 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검찰 길들이기의 완결판이나 다름없다. 정권 교체 이후의 안전판까지 깔아 놓겠다는 속셈마저 엿보인다.
[사설] 수사 통제에 ‘인사 학살’까지 하겠다는 건가
입력 2021-05-29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