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님, 얼마에 사셨죠”…현물 기부 취득가 입증 논란

입력 2021-05-28 00:05 수정 2021-05-28 00:05
연합뉴스TV 제공

공익재단에 현물을 기부하는 경우 기부자가 취득한 시점의 가격을 적어야 한다는 과세 당국 해석이 나오면서 기부 행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물 기부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아름다운가게 등 공익재단에서의 혼란이 대표적이다. 국세청 해석을 적용하면 시민들이 물품을 기부할 때 재단은 기부자가 ‘얼마에 기부 물품을 샀는지’ 확인해야 한다. 기부자가 구매 가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소명하지 않으면 재단은 기부영수증을 발행해 주지 못하고, 회계 장부 작성도 어려워진다.

정낙섭 전 아름다운가게 사무처장은 27일 “현물 기부로 운영되는 곳에서는 매장에서 되파는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는데, 국세청 해석대로라면 기부자 본인이 취득한 금액을 소명해야 해 일종의 기부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단이 회계 감사 지적을 우려해 현물 기부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과세기준자문 결과를 낸 법령해석과 관계자는 “현물 개인 기부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향후 법 개정을 통해 해결돼야 하는 문제”라고 답했다. 반면 공익법인 담당 국세청 관계자는 “재단은 개인으로부터 기부를 받은 시점의 가격을 장부에 기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해석이 엇갈리는 것이다.

고가 미술품 등의 현물 기부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은 이 회장 소유 미술품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 해석대로라면 이 회장 미술품을 공익 재단에 기부하려면 재단은 이 회장이 미술품을 샀을 당시 가격을 물어 장부에 기재해야 한다.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다면 기부금영수증은 감정평가금액을 기준으로 발급하지만, 재단 장부에는 이를 기재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기부가 이뤄지는 시점의 가치로 장부가액이 매겨지는 게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김준석 세무법인 광장리앤고 세무사는 “국세청 해석이 통용되면 개인에게 과거 가격을 입증해야 할 의무가 생겨 현물 기부를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기부 행위 발생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성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