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남자로 보이는 일

입력 2021-05-28 04:07

초등학생 때와 고등학생 때 남자처럼 머리카락을 짧게 쳤던 적이 있다. 진짜 남자로 오인을 받아 종종 곤경에 빠지곤 했던 시절이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대중 목욕탕에 갈 때면 내가 속옷을 벗기 전까지 엄마는 주변 아주머니들에게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다 큰 아들을 여탕에 데려온 몰상식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 있노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로부터 ‘남자냐 여자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들었다.

2년 전 아주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그 사이 나는 너무나 명백하게 여성으로 보이는 얼굴을 갖추고 화장도 하다 보니 남자로 오인받는 일을 옛날처럼 자주 겪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소소한 에피소드는 몇 개 있다. 짧은 머리에 헐렁한 셔츠를 입은 나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보고 누군가 멋지다며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백인 여성이었다.

누군가와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영어 만능주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늘 좋은 기회로 여겨지는 법이다. 나는 신이 나서 머릿속에 내가 아는 영어 표현들을 서둘러 소환해가며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몇 분 동안 그가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를 남자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실한 관계를 찾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던 그는 내가 ‘그런데 있잖아, 유감이지만 나는 여자야’라고 밝히자 믿을 수 없다며 ‘오케이, 땡스’라는 말을 하고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이런 일도 기억난다. 작업하러 한 카페로 가는 길에 어느 골목이 통제가 됐기에 “사람도 출입이 안 되나요?” 하고 거기 서 계신 인부께 물어봤다. 그가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잘생긴 사람은 됩니다!” 하고 바리케이드를 치워줬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남자로 보인다니 기분이 좋다고. 기왕이면 백인 남성으로 보이면 더 좋겠다고. 어릴 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생각이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