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부수면 주거침입 유죄… 주차장까지 쫓아가면?

입력 2021-05-27 00:06
국민DB

남의 집 현관문 잠금장치를 부수고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면 주거침입일까. 새벽에 여성을 쫓아 집 주차장까지 따라간 남성은 주거침입죄로 처벌받았을까.

최근 법원에서 연달아 주거침입죄에 대한 판단이 나왔다. 전자는 ‘주거의 평온’을 해쳤다며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후자는 해당 주차장을 ‘주거 공간’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어느 범위까지 주거 공간으로 봐야 하는지, 보호법익인 주거의 평온은 어느 시점부터 침해되는지 등이 쟁점이 된 셈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박설아 판사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76)에게 최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층간소음으로 화가 난 A씨는 지난해 5월 같은 빌라에 사는 B씨를 찾아가 손잡이를 부수고 현관문을 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 측은 “출입문 앞에서 이야기만 했다”며 주거침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그렇다고 해도 현관문을 강하게 열려는 과정에서 잠금장치가 부서져 문을 열고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주거의 평온을 해했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집 안까지 침입하지 않아도 주거의 평온을 깨뜨렸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는 게 그동안의 법원 판단이었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처음 본 여성을 쫓아가 초인종을 눌러 기소된 남성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여성인 피해자가 느끼는 근원적 불안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으로 주거의 평온이 깨진 피해자는 이후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주거침입죄 성립에 불법적 목적 여부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절도 목적으로 초인종을 눌렀지만 주거침입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던 사건이 있다. 2008년 대법원은 이 사건 상고심에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인종을 누른 행위만으로는 주거의 평온을 침해할 객관적인 위험성이 포함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범죄를 목적으로 했지만 실제로 주거의 평온을 해치지 않았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아파트 공용공간을 어디까지 주거의 범위에 포함시킬지도 쟁점이다. 그동안 법원 판단을 종합하면 아파트 복도와 계단은 모두 주거 공간에 포함되지만 이보다 개방된 곳은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새벽에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 빌라 1층 전용 주차장까지 따라간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해당 주차장은 외부 차량과 보행자가 드나들 수 있어 주거 공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주거침입의 쟁점과 관련해 다양한 견해들이 나오자 대법원은 다음 달 주거침입죄 관련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2명 이상이 한집에 살 때 1명만의 동의를 받고 들어간 외부인에게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느냐는 게 논의 주제다. 이 역시 동의하지 않은 나머지 한 명의 주거의 평온 문제와 연결된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주거침입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나오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니 대법원에서도 논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