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재개발 규제 대못 뽑았다… 정부 ‘공공 공급’ 차질 빚나

입력 2021-05-27 04:03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동안 재개발의 가장 큰 장벽으로 꼽혔던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등 재개발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26일 밝혔다.

그동안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과 공공재개발 등 공공 중심의 공급 방안을 추진해온 정부는 “민간재개발과 공공재개발이 경쟁 관계가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다. 그동안 공공 중심 개발 참여를 저울질하던 재개발 구역에서 민간재개발로 선회하는 구역이 나오면 정부가 약속한 공급 물량 등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등 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6대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주거정비지수제는 해당 구역 주택의 노후도와 주민동의 등의 지표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 70점 이상이어야 재개발을 가능케 한 서울시 자체 행정지침이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5년 도입됐다. 주거정비지수제 폐지에 따라 법적 요건만 갖추면 재개발 구역지정이 가능해진다.

서울시는 또 사전타당성조사부터 정비계획 수립까지 시가 주도, 공공성이 담보된 합리적인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공공기획’ 제도를 전면 도입하는 대신 정비구역 지정절차를 5년에서 2년 이내로 대폭 축소키로 했다. 사업 초기 주민 제안 단계의 동의율은 기존 10%에서 30%로 높이되 사전타당성 조사단계도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인다.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한 재개발해제지역은 주민 합의에 따라 신규구역으로 지정하고, 그동안 2종 일반주거지역 중 7층 이하로 층고 제한이 있던 지역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 이 제한을 푼다. 오 시장은 “2015년부터 서울 시내 신규 지정 재개발 구역이 단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주택 공급이 억제돼온 만큼 중장기적 주택 수급 안정을 이루려면 재개발·재건축 정상화가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 브리핑은 공교롭게도 국토교통부가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4차 선도사업 후보지를 발표하기 1시간 전에 이뤄졌다. 국토부는 위클리 주택공급 브리핑에서 서울 중랑구와 인천 미추홀구·부평구 등 8개 후보지를 추가 발표했다. 지금까지 총 46개 후보지를 선정, 전체 목표 물량의 27.3%에 해당하는 22만8400가구의 주택 공급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 시장의 재개발 규제 완화 발표로 시장에서는 정부의 공공 주도 공급 계획에 힘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역세권, 저층 주거지 등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의 주요 대상지 대부분은 옛 뉴타운 해제지역 등 재개발 대상 지역이다. 그동안 주민 간 이견이나 사업 수익성, 지자체 규제 등의 장벽 탓에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곳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나서서 꼬인 실타래를 풀고 개발을 진행한다는 게 공공 중심 주택공급 구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의 방침대로 지자체 규제 완화로 수익성이 개선되고 개발이 진행되면 굳이 기부채납(개발 사업자가 공공시설을 설치한 뒤 국가나 공공기관에 소유권을 이전해주는 것) 등의 비율이 높은 공공 중심의 공급에 기댈 필요가 없다. 벌써 강북 지역의 일부 뉴타운 해제지역 등을 중심으로 개발 기대감으로 시세가 들썩거릴 조짐을 보인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서울시 발표 내용은 그동안 국토부와 서울시가 협의해온 부분”이라며 “민간 재개발이라도 충분한 공공성과 공익적 고려가 담겨야 한다는 점은 같으므로 민간재개발과 공공재개발은 상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 공공주택특별법 개정 등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의 법적 근거도 마련되기 전에 서울시가 재개발 규제 완화를 발표하고 나선 데 당황하는 기색도 감지된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오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재개발 규제 완화 방안을 들고나왔다. 시장 불안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고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정책관도 “지금은 시장이 안정으로 접어드느냐, 과열이 재현되느냐의 중요 변곡점이다. 시장 안정이 주택정책의 최우선 방점”이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세종=이종선 기자, 김재중 선임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