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정치는 가라” 2030의 역습… ‘이준석 태풍’, 정가 휩쓴다

입력 2021-05-27 00:06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여론조사 1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 정권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와 ‘도로한국당’에 대한 우려가 ‘이준석 신드롬’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대표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이 전 최고위원.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에서 ‘원외 30대’ 주자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당원 대상이 아닌 일반 여론조사 결과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세가 더욱 견고해지면서 여야 정치권도 초반과 달리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준석 태풍’의 동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기성 정치권의 ‘늙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 2030세대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 정권교체를 바라는 전통 보수층의 전략적 태도 변화, 방송 출연 등으로 쌓은 이 전 최고위원의 높은 인지도와 ‘이슈 파이팅’ 능력 등을 이유로 꼽는다.

다만 이 전 최고위원의 지지세가 실제 당대표 당선으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당 안팎에서는 그가 ‘페미니즘 논쟁’에서 ‘이대남(20대 남성)’ 지지 여론에 편승해 불필요한 남녀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또다시 드러난 2030의 위력


JTBC가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2, 23일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이 전 최고위원은 30.3%를 기록해 나경원 전 의원(18.4%)과 주호영 의원(9.5%)을 크게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머니투데이 미래한국연구소가 여론조사업체 PNR에 의뢰해 실시한 정례조사에서는 지난 8일 이 전 최고위원 지지율이 13.9%로 나경원 전 의원(18.5%)에 뒤처졌지만, 지난 22일에는 이 전 최고위원이 26.8%로 나 전 의원(19.9%)을 앞서며 1위로 올라섰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는 4·7 재보궐선거에서 문재인정부와 여당을 심판했던 2030세대들이 이제는 야당을 향해 근본적인 혁신을 촉구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26일 “2030세대는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정치인을 찾아왔는데 그게 이준석”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일자리 문제나 공정 이슈로 현 정부에 등을 돌린 2030세대는 보궐선거에서 제1야당의 힘을 빌려 여당을 심판했다”며 “선거 이후 다시 보수 기득권으로 돌아갈 조짐을 보이자 제1야당마저 심판하려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권 경쟁에 뛰어든 중진 의원들의 경우 획기적인 변화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 30대 원외 0선이 당권에 도전한다는 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지금이 대선 직전이 아니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오히려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총선 이후 전국단위 선거 4연패 끝에 4·7 보궐선거에서 ‘성공 방정식’을 발견한 야권 지지층의 전략적 태도 변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의 개혁과 혁신을 통해 대선까지 이기라는 국민의 주문”이라며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2030세대의 지지를 계속 가져가지 않으면 ‘도로한국당’으로 갈 것이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홍 소장은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전략적 투표를 보수 지지층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의 높은 인지도, 각종 토론에서 상대를 논리적으로 비판했던 그의 캐릭터가 소구력을 얻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술렁이는 국민의힘

당초 나 전 의원과 주 의원의 ‘양강’으로 흘러갈 것이란 예상이 깨지면서 국민의힘 내부는 술렁이고 있다. 우선 초재선의 경우 이 전 최고위원의 돌풍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기류가 강하다.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 당대표 경선은 예상대로 흘러 재미가 없었는데 우리는 컨벤션 효과가 상당히 있을 것 같다”며 “그 에너지를 바로 대선으로 연결하면 당으로서는 굉장히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선거 초반 영남이냐 비영남이냐는 좋지 않은 구도가 세대 간 대결로 바뀌었다”며 “개혁이냐 경륜이냐는 구도는 마이너스 효과보다는 플러스 효과가 많다”고 했다.

반면 중진들은 이 전 대표의 경험 부족, 당대표가 됐을 경우 대선후보 경선 관리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이 ‘유승민계’인데 대선 후보 관리를 해야 할 당대표로서 적합하지 않다”며 “젊다고는 하지만 아직 경험이 미숙한데 복잡한 대선정국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이 ‘이대남(20대 남성)’ 관련 역차별 문제 등 젠더 이슈로 불필요한 남녀 갈등을 일으킨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다른 의원은 “젠더 갈등은 국민통합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심이 민심 따라갈까

이 전 최고위원이 비중이 높은 당원투표(예비 경선 50%, 본경선 70%)에서도 여론조사만큼의 결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는 건 흥행 측면에서 반갑지만, 실제 당원들의 선택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정권교체 열망이 높은 상황에서 당심이 결국 민심을 따라갈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은 26, 27일 여론조사를 거쳐 본경선 진출자 5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6·11 전당대회까지는 주자들의 합종연횡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전 최고위원과 김웅 김은혜 의원 등 신진 그룹 연합군이 결과에 따라 단일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고, 중진들도 신진 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공동행동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백상진 강보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