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미국 검찰이 기소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법정에 출석했다. 그는 “진실과 상식을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연방지방법원은 이날 크리스토퍼 안의 스페인 송환여부를 결정하는 심리 절차를 재개했다. 스페인 정부는 그가 2019년 2월 북한대사관에 진입한 ‘자유조선’ 소속 용의자 7명 중 한 명이라며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미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스페인에 신병을 넘길 것을 사법부에 요청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양복 정장 차림의 크리스토퍼 안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미국 검찰과 크리스토퍼 안 변호인은 재판에서 스페인 송환의 법적 정당성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변호인은 그의 신병이 스페인에 넘겨지면 북한의 살해, 납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며 인도주의적 예외 조항에 따라 송환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특히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된 뒤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미국 내 북한문제 전문가인 이성윤 터프츠대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오토 웜비어의 어머니 신디 웜비어는 “북한은 살인마다. 아들이 괜찮을 것이라고 거짓말만 했다”며 송환을 반대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감시카메라에 잡힌 크리스토퍼 안의 모습을 보여줬고, 자유조선 멤버들이 사건 이틀 전에 모조 권총과 칼, 포박용 도구를 사들인 영수증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검찰은 그를 주거침입, 불법감금, 협박, 폭력을 수반한 강도, 상해, 조직범죄 등 6가지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앞서 크리스토퍼 안 측은 지난달 국민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 사건이 북한 외교관의 망명을 돕기 위한 ‘위장 납치극’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 놓았다(국민일보 4월 28일자 12면 참조). 그는 인터뷰에서 “우리로서는 납치로 위장해야 하는데, 북한 외교관에게 ‘자, 갑시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부러 CCTV 앞에서 쇼를 벌였다. 북한 정권이 이 화면을 볼 때를 대비해 납치처럼 보여야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대사관 직원 부인이 2층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입었고, 행인이 이를 스페인 경찰에 신고하면서 일이 어그러졌다는 게 크리스토퍼 안 측의 주장이다.
담당 재판장인 진 로젠블루스 판사는 사건이 복잡하고 검토해야 할 자료가 많다면서 다음 달 4일을 추가 심리 기일로 지정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재판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과 만나 “진실과 논리, 상식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재판장께서 옳은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도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지지자와 저를 믿고 오랫동안 제 곁을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