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막걸리 사러 오시는 할아버지 손님, 내쫓지 마세요.” 어느 편의점을 양도받던 날, 원래 편의점을 운영했던 점주가 전달사항을 편지로 남겨놓았다. 그동안 여러 번 편의점 양수도 과정을 겪었지만 다음 점주를 위해 그렇게 꼼꼼히 기록을 전해준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런 손님이 있으니 특별히 잘해 드려라, 이런 손님은 조심해라, 어떤 알바는 계속 고용했으면 좋겠다, 어떤 상품은 단골손님이 있으니 재고 관리에 신경 써달라, 겨울에 수도관이 얼면 이렇게 조치하면 된다, 심지어 근처 맛있는 중식당 전화번호까지.
맨발로 막걸리 사러 오는 할아버지 손님의 정체는 곧 알게 됐다. 편의점을 새로 오픈한 그날 오후, 바로 찾아왔으니까. 역시 맨발로. 그런데 왜 내쫓지 말라고 했을까. 쫓아내면 200m쯤 떨어진 다른 편의점으로 가시는데, 그때도 맨발로 가신다나. 그러다 혹시 유리 조각에 베일까봐, 차라리 여기서 팔아드리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바로 옆 공터에 폐지를 쌓아두고는, 신발 벗고 양말까지 훌러덩 벗어 던지고 편의점으로 오셨다. 그리고 손수레에 기대앉아 막걸리 한 사발 드시는 시간이 하루의 낙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편의점에 들어오면 가끔 다른 손님들이 놀라 피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속닥속닥 조용히 사연을 설명했다. 제발 슬리퍼라도 신고 오시라고 애타게 말씀드려도 할아버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다음 날에도 태연히 맨발로 왔다. 대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힘겹게 손수레를 끌며 달아오른 발바닥의 온도를 그렇게라도 달래고 싶었던 것일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지 그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며 만났던 손님들은 오래 기억으로 남는다. 삼각김밥이 폐기되는 시간에 맞춰 편의점을 찾는 초등학생이 있었다. 원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좋은 뜻이라도 손님에게 드리면 안 되는데, 무엇보다 위생과 안전 때문이고, 혹시 모를 법적 분쟁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저 주시면 안 돼요?” 하면서 눈을 반짝이는데 어찌 매정하게 안 된다고만 하겠나. 그러던 어느 날 동생까지 데리고 왔다. 비좁은 시식대에 앉아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는 형제의 다정한 뒷모습을 보다가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스쳤다. 세상은 저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 편의점은 몇 개월 만에 그만두게 됐다. 나중에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그 동네를 들렀다. 거기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허름한 건물은 사라져 다른 편의점으로 바뀌었고, 공터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캔커피를 구입해 계산을 치르며 편의점 근무자에게 혹시 맨발로 막걸리 사러 오시는 할아버지 아직 계시냐고 물었다. 웬 엉뚱한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근무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삼각김밥 형제도 모른다고 했다. 편의점은 모든 면에서 편리하고 편안한 곳이지만 마음이 항상 편치는 않다. 가끔 하늘이 유난히 파란 날,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부디 건강하길. 그리고 세상이 한 뼘쯤 더 그들을 위한 세상이 되길.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