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이곳 사람들은 올림픽 기간에 들어올 외국인을 감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영어로 말을 걸면 서운한 응대를 받을 수도 있어요.”
얼마 전, 도쿄올림픽 출장을 준비하며 숙소를 구하기 위해 일본 현지 한인 민박 운영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들은 말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발길이 끊긴 민박집을 닫고 부모의 장사를 돕는다고 했다. 생활고에 놓인 자신보다 ‘환영받지 못할 외국인’이 될 올림픽 파견 기자를 먼저 걱정했다. 얼굴을 모르고 만날 기약도 없는 그와 “잘 버티자”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잘 버티자니…. 올림픽 개최지에서 손님을 맞이할 사람과 그곳으로 찾아갈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인사가 왜 이리도 음울할까. 오는 7월 23일로 예정된 올림픽 개막일은 55일 앞으로 다가왔다.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기대처럼 올림픽 개막일이 코로나19 대유행을 이겨낸 인류의 승리를 선언하는 날로 다가온다면, 세계인은 한껏 고무된 얼굴로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의 표정은 어떤가. 국가대표의 승전 의지를 담아야 할 올림픽 관련 소식은 온통 코로나19 재유행으로 겁에 질린 일본 국민의 얼굴로만 채워지고 있다. 지금쯤 ‘지구촌 축제’ 같은 문구로 분위기를 끌어올렸어야 할 글로벌 기업들의 올림픽 마케팅도 사라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의 국난을 올림픽으로 극복하려던 일본 정부와 국민의 의지는 감염병 재난에 와해된 지 오래다. 일본 국민의 80% 이상이 ‘취소·재연기’를 요구하는데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연일 ‘안전·안심’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그 엇갈린 표정을 보고 있으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흩어지고 고립하길 반복하며 1년을 넘게 살아온 우리는 올림픽을 통한 세계의 집결이 몰고 올 파장을 아직 가늠하지 못한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인 백신은 코로나19처럼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올림픽 개최국 국민이나 그곳으로 찾아갈 외국인이나 서로를 껄끄럽게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국민의 냉대 같은 것은 걱정거리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현실성과 동떨어진 일본 정부와 IOC의 방역 지침을 보면 눈앞이 깜깜하다. 그들은 올림픽 참가자를 위한 매뉴얼 격으로 ‘플레이북’을 지난 2월과 4월, 두 차례 배포했다. A4 인쇄용지 51쪽 분량의 2차 플레이북에 담긴 방역 지침의 주요 내용을 몇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 입국 후 14일 이내에 대중교통 및 식당 이용 금지, 경기장과 숙소 이외의 장소 이용 제한, 일본 거주자와 대면 금지, 매일 예약한 경기장만 방문 가능, 이 모든 14일의 계획을 미리 예상하고 활동 계획서에 적어 제출, 이행하지 않으면 추방.’
이 방역 지침을 그대로 적용해보자. 올림픽은 17일간 진행된다. 개막일에 맞춰 도쿄에 들어간 기자는 8월 8일로 예정된 폐막일의 3일 전부터 취재를 위한 이동의 자유를 얻는다. 이 경우 한국의 ‘금맥’인 태권도·펜싱을 개최하는 일본 지바현으로 경기일에 맞춰 이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미디어 전용 이동수단을 제공할 계획이지만 개막일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지금까지 도시 간 노선을 확정하지 않았다.
우승 후보가 있는 서로 다른 종목 여럿의 경기일이 겹치기라도 하면 매일 경기장 예약 시스템에서 ‘찍기’를 잘한 기자만이 금메달리스트의 환희와 감동을 목격하고 기록할 행운을 얻는다. 반대로 깜짝 금메달을 딴 선수가 자국 기자 한 명 없는 경기장에서 모국어로 소감을 말할 기회조차 없이 퇴장하는 장면도 그려볼 수 있다.
취재의 혼란만 몇 가지를 예상한 게 이 정도다. 5년의 훈련 성과를 쏟아내야 하는 국가대표들에게 놓일 혼란은 체육인이 아닌 기자로서 짐작하기도 어렵다.
일본 정부와 IOC가 해법 없이 시간만 끄는 동안 각국 국가대표들은 구슬땀을 1년이나 더 쏟았다. 이를 생각하면 올림픽 취소는 이제 괜찮은 선택지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금지’만 빼곡히 써놓은 플레이북은 일본 정부와 IOC가 나름대로 찾은 출구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일본 국민에게 ‘매뉴얼대로 통제했다’고 핑계 댈 수는 있을 테니까. 익숙하지 않은가. 실패한 매뉴얼의 잔재쯤은 간단하게 바다로 흘려보내겠다는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