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예수님과 어린이

입력 2021-05-28 03:05

하나님이 보시는 어린이와 우리가 보는 어린이는 관심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어린이 평가 기준은 우리와 다릅니다.(13절) 당시 어린이들은 회당에서 랍비에게 축복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어린이를 데리고 온 사람을 내쫓았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린이를 천하게 여기고 무시했거나,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말씀을 애들이 알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예수님이 사역을 마치고 쉬는 휴식 시간이므로 쉴 틈을 드려야 한다는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위해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다거나, 예수님 말씀은 어린이와 수준이 맞지 않는다거나, 예수님의 건강을 제자들이 챙겨드린다는 생각엔 문제가 있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소들이 날뛰어 법궤가 떨어질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운반 책임자였던 웃사는 법궤를 붙들어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가 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법궤 이동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를 절대 신뢰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는 하나님 나라를 그들이 배운 대로 믿습니다. 이러한 ‘절대 신뢰’가 바로 어린이의 평가 기준입니다.

둘째, 어린이 같은 품성에 천국을 주셨습니다.(14, 15절) 당시 예루살렘 성전 주변은 마치 오늘날 남대문 시장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채찍을 휘두르며 조용한 성전으로 만드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어린이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린아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며 축복하셨습니다. 이런 자란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성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문자적, 생물학적 어린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이를 끌어안고 축복하신 겁니다. 이처럼 천국은 착한 일을 하거나 나라에 큰일을 해서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어린이를 축복의 대상이라고 하십니다.(16절)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온 아이, 제자들이 귀찮고 하찮게 여긴 아이에게 축복했습니다. 부모에게는 귀중한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인 아이에게 예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온 그 어린이는 일종의 ‘태신자’입니다. 이 어린이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건강도 없는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귀한 존재입니다. 축복의 대상입니다. 태신자는 예수님이 피로 사신 아이입니다.

본문에서 ‘어린이’란 말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 읽어 보면 어떨까요. “(명복)이가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명복)이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명복)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16절) (명복)이를 안고 (명복)이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명복 목사(안양 초원교회)

◇총신대 신학대학원(예장 합동보수)을 졸업했고 총신대 기획과장, 학생과장을 역임했습니다. 네팔 성토신학교를 설립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극동방송과 CTS기독교TV에서 방송 사역, 농어촌 교회 음향시설 제공, 반동성애 및 전국 사랑방운동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