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ON’… 런던·뉴욕 무대 다시 맥박이 뛴다

입력 2021-05-29 04:08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14개월 만인 지난 16일 ‘쥐덫’(Mousetrap)을 시작으로 공연을 재개했다. ‘제이미’ ‘헤어스프레이’ ‘신데렐라’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식스’(Six) 등 현재 공연을 재개했거나 재개를 앞둔 연극과 뮤지컬의 포스터들. 런던극장연합 공식 홈페이지 캡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2년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땅바닥에 입을 맞춘 것처럼 나도 지난해 3월 16일 폐쇄 이후 처음으로 공연을 재개한 세인트 마틴 극장 앞 도로에 키스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연극과 뮤지컬 리뷰를 담당하고 있는 평론가 도미니크 카벤디시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쥐덫이 어두웠던 14개월 이후 웨스트엔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길을 이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날 연극 ‘쥐덫’에 대한 감격 어린 관극 소감을 쏟아냈다. 런던 웨스트엔드가 지난해 3월 16일 발표된 영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 지침에 따라 셧다운 된 지 꼬박 14개월 만에 공연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웨스트엔드는 ‘쥐덫’을 시작으로 뮤지컬 ‘제이미’와 ‘식스’가 각각 20일과 21일 돌아오는 등 연일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금은 거리두기를 적용해 객석의 50% 이하로 티켓을 팔지만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판매 좌석을 좀더 늘려갈 계획이다. 그리고 웨스트엔드와 함께 세계 공연계의 양대 산맥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도 9월 14일부터 재개를 선언하고 지난 7일부터 예매를 시작했다. 다만 뮤지컬 ‘하데스 타운’이 9월 2일 재개를 앞당기기로 함에 따라 정상화 일정이 빨라졌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가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은 영국과 미국에서 백신 접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백신을 한 차례 맞았으며, 미국은 코로나19 백신을 완전히 접종한 성인의 비율이 50%, 한 차례 이상은 60%를 넘겼다.

극장 정상화 위해 꾸준히 실험한 웨스트엔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영국 공연계는 거리두기 좌석제 등을 실험하며 극장 정상화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작곡가이자 극장주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지난해 7월 런던 팔라디움 극장에서 마스크 착용, 체온 측정, 극장 소독 등 한국의 공연장 방역을 벤치마킹 하고 객석 띄어 앉기를 적용해 공연을 올린 실험은 대표적이다.

또 지난해 여름 코로나19가 잠시 주춤해지자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코벤트가든)와 국립극장(NT) 등은 10월 조심스럽게 소규모 공연으로 극장 문을 열었다. 로열발레단은 짧은 갈라 공연을 10월 9일과 17일 두 차례 선보였으며, NT는 10월 21일 1인극 ‘잉글랜드의 죽음: 델로이’를 올리비에 극장 무대에 올렸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머시브 연극 ‘위대한 개츠비’는 지난해 10월 공연을 재개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11월 문을 닫았다가 12월 다시 문을 여는 등 공연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웨스트엔드 공연 재개의 가늠자가 됐다는 평가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영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5일 재봉쇄를 선언함에 따라 애초 11월 28일까지였던 ‘잉글랜드의 죽음: 델로이’는 바로 막을 내려야 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머시브 연극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10월 22일 문을 열었다가 11월 4일 막을 내렸지만 12월 2일 또다시 관객을 받기 위해 문을 열었다.

코로나 시기에 웨스트엔드에서 문을 연 공연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재개관의 가늠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공연장에 적용해서는 공연계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공연 재개와 함께 불거진 논란들

로이드 웨버와 거물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는 웨스트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7월 27일 재개한다고 발표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축소를 밝혔다. 27명이던 단원이 14명으로 축소된다.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전자 키보드가 오보에 하프 트럼펫 퍼커션 등의 역할을 대신할 예정이다. 코로나가 초래한 공연계 위기에 제작비 축소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된 셈이다. 연주자들은 반발했지만, 제작사의 입장은 단호하다. 티켓 판매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오케스트라 규모를 축소하는 프로덕션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인터미션, 즉 중간휴식의 폐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등이 공연 재개를 앞두고 위생 규칙을 강화하고 나섰는데, 공연 시간을 줄이고 관객의 불필요한 이동을 막기 위한 인터미션 폐지가 포함됐다. 인터미션 중 식음료 판매 중단은 공연장 수익에 큰 타격을 주지만 비말에 의한 감염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만 보고 가라는 극장 측의 입장에 애호가들은 반대하고 있다. 극장이 그저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교 활동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 등에서도 최근 공연장에서 식음료 판매를 중단함으로써 인터미션 때 관객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추세다.

브로드웨이 재개는 뉴욕의 일상 복귀 상징

미국 뉴욕주가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면서 뉴욕 브로드웨이도 9월 14일부터 공연이 재개된다. 지난해 3월 12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봉쇄조치의 일환으로 공연이 중단된 지 18개월 만이다. 게다가 거리두기 없이 좌석의 100%를 팔 수 있다.

뉴욕주는 5월 19일부터 식당과 체육관 등 각종 매장의 영업 규제를 폐지했는데, 뮤지컬의 경우 공연 리허설과 작품 마케팅 등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4개월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됐다. 올해 안에 약 30개의 뮤지컬이 공연을 재개며, 이중 절반이 9월부터 열린다.

뉴욕주는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백신을 맞은 관객들만 받기를 바란다. 뉴욕시의 주요 관광지와 지하철역 등에서 백신 무료 접종소를 운영하는 만큼 불가능하지는 않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와 극장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도 마스크 착용, 백신 접종 의무화 등에 대한 방역 지침을 논의 중이다.

지난달 3일 뉴욕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열린 이벤트 공연은 지난해 3월 코로나로 브로드웨이가 셧다운 된 이후 1년여 만에 열린 실내 공연이었다. 1700석의 객석에 공연계와 의료복지기관 관계자 150명만 초대됐다. 이들은 공연장 입장을 위해 코로나 검사 음성 판정 또는 백신 예방접종 완료 증거를 제시한 뒤 디지털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문화산업의 한 축인 브로드웨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2019년만 해도 41개 극장이 146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여 18억 달러(약 2조 원)에 달하는 입장권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난 3월까지 아예 실내에서 라이브 공연을 올리지 못했다. 뉴욕 주 정부가 지난 4월 초부터 정원 대비 33%, 100명 이하의 관객을 받는 조건으로 실내 공연장 재개를 허가했지만 이런 인원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중대형 극장은 여전히 문을 닫은 채였다. 대극장의 경우 지난달 3일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열린 36분간의 이벤트 공연이 유일했다.

공연계는 브로드웨이의 재개를 환영하고 있다. 다만 적지 않은 극장과 제작사는 공연 재개 여부와 시기를 놓고 고심중이다. 관객이 극장에 돌아올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절반 가까이 채웠던 관광객의 유입이 여전히 불확실한 데다 객석의 100%를 채우는 것이 관객에게 되레 감염 우려를 줄 수 있어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