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참사 속 기적… 죽는 순간까지 아빠는 아이 품었다

입력 2021-05-26 04:03
이탈리아 산악구조대 관계자들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피아몬테의 모타로네 산을 오르다 추락해 종잇장처럼 구겨진 케이블카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이 사고로 탑승객 15명 중 14명이 숨졌다. 유일한 생존자인 이스라엘계 5세 어린이는 아버지가 사고 당시 힘껏 껴안아 살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AP뉴시스

이탈리아 케이블카 추락 참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5세 어린이의 기적적인 생존에는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품에 꼭 껴안은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발생한 이탈리아 케이블카 추락 참사에서 탑승객 15명 중 14명이 숨졌다. 유일한 생존자는 아이탄 비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5세 어린이였다. 아이의 생명을 살린 건 아버지의 본능적인 부성애로 보인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25일(현지시간) 토리노의 레지나 마르게리타 병원 관계자를 인용해 “이처럼 심각한 충격에서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아이를 품에 안고 보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케이블카가 20여m 아래로 추락한 뒤 약 1000m 가량의 산 비탈면을 구르는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아이의 얼굴엔 긁힌 상처 하나가 없었으며 뇌손상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라 레푸블리카는 “(아이의 상태는) 기적과도 같다”며 “아마도 숨진 아빠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아이를 껴안아 충격을 완화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추락한 케이블카가는 종잇장처럼 구겨질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이는 현재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머리 가슴 복부 등을 다쳤으며 다리에는 다발성 골절상을 입었다. 의료진은 5시간에 걸친 뼈 접합 수술을 무사히 마쳐 최대 고비를 넘겼다. ANSA 통신은 “아이의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계인 이 아이는 이번 사고로 두살 남동생과 부모, 조부모 등 5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현재 이 아이는 비보를 듣고 이스라엘에서 날아온 고모·삼촌 등 친척들의 보호 아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 어린이 가족 모습. 스탠드위드어스 트위터 캡처

이번 사고에 충격을 받은 이탈리아 국민들은 사고 희생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이 애도하면서 아울러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아이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는 인형과 응원 편지 등이 도착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번 참사는 케이블카의 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계 당국의 발표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사고 경위를 재구성해보면 케이블카는 출발 후 한동안 큰 문제 없이 작동했으나 정상을 약 100여m 남겨 놓고 갑자기 와이어에 문제가 생겼다. 이 때문에 주 케이블이 끊어지며 케이블카가 뒤로 수 미터 후진했고, 이어 철탑에 부딪힌 뒤 보조케이블에서도 이탈해 아래로 추락했다. 케이블카는 이후 2∼3바퀴를 구른 뒤 멈췄다. 당시 와이어가 끊어진 직후 케이블카의 후진을 막는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투입된 산악구조대 관계자는 “와이어 파열과 비상 브레이크 미작동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