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그 더비, 8년 만에 뜬 ‘오리지널 클라시코’

입력 2021-05-26 04:07
FC 안양 서포터즈 ‘A.S.U. RED’가 2013년 5월 8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FA)컵 32강전 수원 삼성과 ‘오리지널 클라시코’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FC 안양 제공

“집중력이나 의욕이 다른 경기보다 월등히 높았어요. 선제골이 들어간 뒤엔 ‘이길 수 있겠다’ 생각했죠.”

2013년 5월 8일 안양종합운동장. K리그 챌린지(2부)의 신생팀 FC 안양은 K리그 클래식(1부)의 터줏대감 수원 삼성과 대한축구협회(FA)컵 32강에서 맞붙었다. 안양은 후반 7분 수원 골키퍼 정성룡을 뚫어낸 정재용의 벼락같은 골로 리드를 잡았지만, 주전 골키퍼 정민교가 부상을 입은 뒤 무너졌다. 후반 42분 수비수 정현윤의 자책골이 나왔고, 단 6분 뒤 수원 서정진에 버저비터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결국 경기는 안양의 1대 2 패배로 막을 내렸다.

당시 센터백이자 주장이었던 김효준 안양 홍보마케팅 팀장은 23일 국민일보와 만나 “팬분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시는데, 종료 직전에 2실점하고 지니 너무 허탈하고 미안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떠올렸다.

치열했던 경기 내용만큼이나 뜨거웠던 건 경기장 분위기였다. 1만1742명의 관중이 가득 채운 경기장에선 FC 안양 서포터즈 ‘A.S.U. RED’와 수원 삼성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의 열띤 응원전이 펼쳐졌다. 홍염과 폭죽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린 두 서포터즈는 90분 내내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의 함성과 응원가를 내지르며 드라마를 완성했다.

원정 경기임에도 수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아 응원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수원 삼성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의 모습. 수원 삼성 제공

당시 벤치에서 함께했던 주현재 안양 스카우터는 “선수들도 팬들도 라이벌이자 당시 최고의 팀 수원과 맞붙어 더욱 진지했던 것 같다”며 “2부리거로서 관중도 많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경기에 뛴다는 게 쉽지 않아 준비를 많이 했는데, 출전하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축제 분위기가 가능했던 건 두 팀이 공유하는 역사와 그로부터 파생된 공유 정서 때문이다. 안양 LG가 있던 시절 K리그 대표 강팀이었던 안양과 수원의 매치는 수많은 스토리를 생산하던 K리그의 대표 더비였다. 수원 코치였던 조광래 대구 FC 대표이사의 1998년 안양 감독 취임으로 불타기 시작한 양 팀의 라이벌 의식은, 이듬해 안양 출신 서정원 청두 싱청 감독이 프랑스에서 돌아와 수원 유니폼을 입으며 극에 달했다.

열정적인 것으로 유명했던 두 팀의 대규모 서포터즈들은 이후 계속해서 맞부딪쳤다. 매치가 열리는 날엔 팬 ‘총동원령’이 내려졌고, 수원의 카드섹션과 안양의 홍염이 경기장을 수놓았다. 안양과 수원을 잇는 지지대(遲遲臺)고개에서 이름 딴 ‘지지대 더비’로 이름 붙은 더비전 뒤엔 서포터즈 간 충돌도 간간이 발생했지만, 팬들은 그 기반에 ‘상호존중심’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안양의 23년 된 팬이자 서포터즈 소모임 ‘크림슨 타이드’ 소속 직장인 진재환(39)씨는 “당시 양 팀 팬들이 치고받긴 했지만 잘못한 게 있으면 추후 사과하는 등 서로에 대한 존중심이 있었다”며 “어떻게 보면 축구를 사랑했던 사람들 사이 ‘낭만’이 존재했던 시절인 것 같다”고 추억했다.

LG가 연고 이전을 단행한 2003년을 마지막으로 지지대 더비는 10년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 FC 안양이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된 2013년 양 팀 서포터즈가 만나 ‘오리지널 클라시코’(최초의 고전)란 이름으로 더비를 새롭게 부활시켰다. ‘적(敵)의 적은 동지’라고, FC 서울이란 공통의 적을 가진 두 팀 서포터즈는 ‘상호 존중적 라이벌’ 관계로 새 역사를 시작했다.

송영진 A.S.U RED 회장은 “안양 구단 창단지원조례가 통과한 날 축하 글을 올려준 구단은 수원밖에 없었다”며 “서로의 존재를 계속 의식하던 구단이라 창단 해에 수원전이 성사된 건 안양 부활을 알리는 데 의미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시 8년 만에 양 팀의 두 번째 더비전이 26일 이번엔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열린다. 안양은 FA컵 32강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수원은 대전 하나시티즌을 누르고 16강에서 재회했다. 8년 전과 달리 안양도 이젠 신생팀이 아니다. 특히 올 시즌엔 짜임새 있는 경기력으로 선두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새로 부임한 이우형 감독은 실업팀 시절 FA컵에서 프로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수원의 기세도 무섭다. K리그1에서 잔뼈 굵은 고참들과 ‘매탄소년단’(MTS)으로 불리는 신예들의 조화를 앞세워 최근 7경기 연속 무패(4승3무) 파죽지세로 2위까지 올라선 상태다. 코로나19로 안양 원정팬들의 수원성 방문이 불가능해 아쉽게 양 팀 서포터즈가 함께 불을 뿜는 응원전을 보진 못하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펼칠 양 팀 선수들의 경기력만으로도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8년 전에도 안양을 지휘했던 이우형 감독은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무래도 신생팀이라 완벽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뒷심이 부족했다”며 “지금은 안양이 프로답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이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근 연이은 선방쇼를 펼치고 있는 안양 골키퍼 정민기도 “K리그1 강팀인 수원과 경기라 떨리기도 하지만, 저희도 충분히 강팀이기에 후회 없이 한번 부딪쳐보겠다”고 거들었다.

안양=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