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七仙)계곡은 경남 함양 땅에 속한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힌다. 지리산 원시림에 7개 폭포와 33개 소(沼)가 천왕봉에서 칠선폭포를 거쳐 용소까지 18㎞에 걸쳐 이어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골이 깊고 험해 죽음의 골짜기로도 불린다. 지리산 아흔아홉 골짜기 중 깊고 장엄하기로 단연 으뜸이다.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998년부터 자연 휴식년제로 아예 출입이 금지되다가 1년에 딱 봄·가을 4개월만 허용되고 있다. ‘일곱 선녀’를 찾아 그 계곡의 속살로 들어서 보자.
들머리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다. 1400년 시간을 거슬러 가는 옛 이름과 흔적들이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 관련돼 전해지는 마을이다. 나라가 있던 골짜기인 ‘국골’, 왕이 머물렀다는 ‘대궐터’, 임금을 맞이했다는 ‘어영골’, 왕이 오른 왕등재·왕산, 추성(楸城)이라는 산성과 ‘성안마을’ 등의 지명이 대변해준다. 이웃 산청군의 전(傳)구형왕릉, 왕산, 왕등재 등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출발하자마자 15분 정도 ‘깔딱고개’를 오른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두지마을이다. 6개 가구 10여명이 거주한다. 두지는 뒤주를 뜻한다. 구형왕이 신라군에 쫓겨 국골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군량미를 둔 곳이라 해서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옛 담배건조장 등 오랜 기억 속의 풍경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을을 지나면 붉은색 현수교인 칠선교를 건넌다. 2011년 태풍 무이파 때 부서진 다리를 이듬해 새로 세운 것이다. 칠선계곡이 본격 시작한다. 먼저 계곡 이름에 붙은 선녀탕이다. 일곱 선녀와 곰의 전설이 얽혀 있다.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즐기던 일곱 선녀의 옷을 훔친 곰은 옷을 바위틈 나뭇가지에 숨겨 놓는다는 것을 잘못해서 사향노루의 뿔에 걸쳐 놓았다(전설과 달리 사향노루는 뿔이 없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갖다 줬다. 선녀들은 옷을 입고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됐다.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고 한다.
선녀탕 바로 위는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옥녀탕이다. 옥빛 물길은 선경 그 자체다. 녹음이 우거진 진초록이 물속에 잠겼고, 계곡의 숲이 터널을 이룬다. 옥녀탕을 지나면 곧 비선담통제소다. 여기까지 상시 개방 구간으로 예약없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 너머는 탐방 예약을 한 사람만 들어설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경사가 더욱 심해진다. 정비된 탐방로도 없다. 본격 원시 계곡 산행이 시작된다. 투박한 산길을 지나고 물길을 넘나들고, 산죽 밭 좁은 길을 헤치고 나가노라면 가쁜 숨을 헉헉댄다. 하지만 입에서는 연신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쏟아진다.
통제소를 지나면 왼쪽으로 큰 바위가 눈길을 끈다. 그 바위 아래 왼쪽에 뻥 뚫린 구멍이 있다. ‘청춘홀’로 불린다. 옛날 이 지역에서 나무를 베어 목기(나무그릇)를 만들던 이들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청춘을 다 보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목기 만들던 사람들은 1964년 칠선계곡 등산로를 처음 개척할 때 벌목을 단속하는 줄 알고 나무그릇을 모두 팽개치고 도망갔다고 한다.
첫 번째 폭포는 치마폭포다. 수량이 많은 날 치맛자락처럼 넓게 떨어져서 붙은 이름이다. 탐방 코스에 나오는 공식 폭포는 아니지만 위쪽 다른 폭포를 보기 이전이어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후 칠선폭포. 높이 약 10m로 지리산의 다른 폭포들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지리산의 가장 긴 계곡에서 쏟아지는 폭포답게 수량이 풍부하다. 전날 내린 비 덕분에 엄청난 수량이 더해져 용틀임치며 포효한다. 물소리에 마음이 맑아진다.
다음은 대륙폭포다. 우리나라 산악운동이 활기를 띠던 1964년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발견해 이름 붙였다. 칠선계곡 최고 폭포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량도 풍부하고 낙차도 커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웅장하고 경쾌한 모습에 스트레스가 싹 가신다.
이번 코스의 마지막인 삼층폭포. 되돌아오기 코스와 천왕봉 올라가기 코스의 분기점이다. 수십m에 이르는 바위 사이를 흘러 3층으로 떨어진다. 푸른 숲 사이로 쏟아내리는 물줄기가 부챗살을 펼쳐놓은 것처럼 넓고 시원하다.
여행메모
함양IC→추성리, 지곡IC→개평마을
5~6월, 9~10월 칠선계곡 탐방예약
함양IC→추성리, 지곡IC→개평마을
5~6월, 9~10월 칠선계곡 탐방예약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칠선계곡 입구 추성마을로 가려면 통영대전고속도로 생초나들목이나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함양나들목에서 내리면 지안재·오도재·지리산조망공원 등을 품은 '지리산 가는 길'을 지나간다. 추성마을에는 무료주차장이 넓게 마련돼 있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마천면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마천정류소에서 추성주차장까지 택시로 약 10분이다. 개평마을과 남계서원은 지곡나들목을 이용하면 편하다.
칠선계곡 탐방은 5~6월과 9~10월 4개월간 예약제로 운영된다. 크게 두 코스다. 추성주차장~삼층폭포~추성주차장 구간 13㎞는 수·목·토요일에, 추성주차장~천왕봉 구간 9.7㎞ 구간은 월요일에 가능하다.
왕복 코스는 오전 8시 출발하며 약 7시간 소요된다. 천왕봉 코스는 오전 7시 출발하며 천왕봉까지 8시간 정도 걸린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피소가 운영되지 않아 하산까지 체력부담이 큰 편이다.
예약은 국립공원 예약시스템 홈페이지(reservation.knps.or.kr)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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