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건희 미술관’ 접근성 및 문화쏠림 방지 모두 충족해야

입력 2021-05-26 04:03
다음 달로 예정된 정부의 ‘이건희 미술관’ 건설 부지 발표를 앞두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유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경쟁에 뛰어든 지자체는 부산, 대구, 광주, 수원, 용인, 진주, 경주, 여수 등 줄잡아 20곳에 가깝다. 이들 지자체는 혈연, 지연, 학연은 물론 삼성가와 조그마한 인연이 있으면 이를 내세워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도로를 ‘호암 이병철대로’ ‘삼성 이건희대로’로 지은 지자체도 생겼다.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서면 지역문화 발전을 꾀할 수 있는데다 엄청난 관광 수입도 기대된다. 지자체로선 포기할 수 없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술계가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정부서울청사를 적격지라고 주장하면서 미술관 유치 경쟁은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지역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부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술계 주장에 경도돼선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미술계가 전시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분야 전문가일진 몰라도 부지 선정 등 하드웨어 전문가는 아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 측이 기증한 2만3000여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엔 국보급 유물과 세계적 걸작이 허다한 만큼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관 건립 기준으로 삼은 것은 기증자 정신과 국민 접근성이다. 이 회장 유족 측이 미술관 건립을 사실상 사회에 일임한 상태여서 접근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듯하다. 수도권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는 이유다. 그러나 미술관의 50% 이상, 문화시설의 36%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이건희 미술관마저 수도권에 지어진다면 문화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접근성과 문화쏠림 방지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곳이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