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혼란스럽고 두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 없으시며,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한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해 며느리가 임신했는데 배 속 아기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알았답니다. 의사는 낙태를 권했지만 가족들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낳기로 하고 매일 가정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침내 아기는 태어났고 아기 아빠는 기뻐했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하나님이 새 심장을 만들어 주셨다’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기는 1시간 만에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슬퍼하는 아들 내외에게 선교사님이 말씀하셨답니다. “어떤 사람은 100세를 살지만 어떤 사람은 1시간만 산다. 둘 중 어떤 사람이 정말 잘 살았는지는 하나님만 아실 거다.” 아들 부부는 이 말에 위로를 받고 도리어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던 날 밤중에 찬송했습니다.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두 사람만 있어도 영적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미국 리폼드신학교 스티브 브라운(설교학) 교수는 ‘다 알았다고 생각한 이후 내가 배운 것들’이란 책의 서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고백,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브라운 교수는 자신이 추구해 왔던 진리가 마치 가사만 있는 노래 같은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가사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가사만으로 노래를 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교회와 신학교에서 가르친다면 가사 대신 노래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우리가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오늘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대비책이나 전략, 방안이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었고 주님만 따랐습니다. 그래서 깊은 감옥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에 팔려간 요셉이나 바벨론 포로가 된 다니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염려하고 슬퍼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순간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먼 타향에서도 쓰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따라가는 것이 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요 1:43)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눅 5:11)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주님과 함께 시온산에 선 14만4000명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이들을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 교리 신학 신념을 따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기는 쉽고 간단합니다. 위대한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말씀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어도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아니라 “나를 따를 것이니라”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유기성 선한목자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