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인을 쳐 죽였다. 그 일로 도망자가 돼 미디안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됐다. 흩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하나님의 모략이다.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를 만나고 그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다. 요즘 말로 다민족 결혼을 한 것이다. 유대인 도망자가 광야에서 이방인에 의해 구원받았다.
첫아들을 낳고 ‘게르솜’이라 불렀다. 그 이름은 ‘내가 이방인의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이다.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내 정체성이 됐다는 고백이었다.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이라 불렀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라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삶에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을 대대로 찬양한 것이다.
모세가 출애굽할 때까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두 손자를 맡아 보살폈다. 마침내 사위가 출애굽하자 장인 이드로가 딸과 두 외손자를 모세에게 데리고 왔다. 그는 모세로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원하셨는지 자세히 들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의 제사장 이드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애굽을 이기게 하신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신 하나님이다”(출 18:11)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변화받았다. 모세는 육신적으로 자신을 살렸던 이방인 처가 식구들을 영적으로 하나님께로 인도해 구원받게 했다.
선교는 내가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족,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모세는 동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 또한 우상을 섬기던 이방인 가족 또한 구원으로 인도했다.
모세가 나일강에 버려져 죽게 됐을 때 그를 물에서 건져 구원한 사람은 이방인인 애굽의 공주였다. 애굽인을 쳐 죽이고 도망자가 돼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 때 그를 품어 살려준 사람도 이방인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였다.
모세는 이방인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동족인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유통시켰다.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쳐 죽였던 살인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복의 근원으로 살았다.
‘하나님의 선교 원동력’은 사랑이다. ‘지상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의 감당자들은 ‘지상 대명령’(the great commandment)의 실천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here and now) 시작해 ‘땅끝’까지 내가 받은 사랑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랑을 나누며 복의 근원으로 산다.
필라안디옥교회는 세계전문인선교회(PGM)의 핵심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왔다. 미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미국에서 참 많은 설움과 아픔을 느끼며 오늘까지 살아왔다. 요즘은 ‘아시안 혐오 범죄’로 극심한 인종차별까지 겪으며 하루하루를 산다.
그래서 주변에 우리처럼 디아스포라로 힘겹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쉽게 다가가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었다. 동병상련이랄까. 아픔을 많이 겪은 사람이 아파하는 사람 곁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에 의한, 디아스포라를 위한 디아스포라 선교다.
PGM과 필라안디옥교회는 그래서 멀리 땅끝까지 흩어져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했다. 동시에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here and now)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다른 민족 디아스포라들과 함께 살아왔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아이티 난민이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디아스포라들이다. 아이티 출신 수천명이 이웃에 있는 블루베리 농장에서 집단 거주하며 노동자로 살아간다.
PGM의 강영기 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다. 자신이 사는 이웃 동네에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막노동하며 살아가는 저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시작했다. 필라안디옥교회의 성도들도 강 선교사와 함께 이 사역에 15년 이상 적극 동참해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다. 많은 아픔을 겪으며 살아온 한인 디아스포라이기에 아이티 디아스포라를 품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이다.
성도들과 함께 처음으로 저들을 찾아갔을 때 경찰차 몇 대가 항상 집단 거주지에 상주하고 있었다. 힘든 디아스포라의 삶 속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며 매일 일어나는 범죄로 아파했다. 저들 속에 들어가 우리가 어려웠을 때 받은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찰차가 항상 서 있던 그 자리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경찰 대신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다.
선교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자랑하려는 쇼도 아니다. 교회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방편도 아니다. 그냥 삶을 있는 그대로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와 나누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디아스포라에 의한 디아스포라를 위한 디아스포라의 선교, 즉 하나님의 선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