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 원고를 넘기는 중요한 날이었다. 부다페스트 현지 시각으로 오후 5시까지 넘기면 되니까 지금부터 2시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두어 번의 퇴고를 더 거친 뒤 메일로 발송할 생각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해 음악을 재생시켰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데 중간에 음악이 끊겨버렸다. 버퍼링이 걸렸다고 생각하기엔 꽤 오랜 시간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그 잠깐 사이에 와이파이가 끊긴 것이었다.
이런 상황일 때 전자기기 전원을 껐다가 켜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도 했기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모든 전자기기 전원을 껐다가 켰다. 그래도 와이파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비상사태임을 감지했다. 음악이야 듣지 않아도 상관없으나 와이파이가 없으면 출판사로 원고를 보낼 수 없었다.
근처 카페로 옮겨 원고를 보낼까 했지만 난 아직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기에 카페 내부를 이용할 수 없었다. 옆집에서 와이파이를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일하게 서비스센터에 직접 연락하는 방법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지에 가까운 나의 헝가리어 실력으로 상담사와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걱정이었다. 그래도 일단 수화기를 들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단 3개의 단어를 사용해 갑자기 와이파이가 끊겼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상담사는 해결 방법을 쏟아냈는데 전부 헝가리어여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알아들은 3개의 단어로 내용을 유추해봐야 했다. ‘왼쪽’과 ‘다시’ ‘시작하라’는 단어였다. 나는 와이파이와 관련된 모든 기기의 전선을 뽑은 다음 시간차를 두고 왼쪽부터 전선을 다시 꽂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와이파이가 돌아왔다. 얼른 원고부터 보냈다.
이렇게 타국에서 하나의 산을 넘었다. 넘기 전에는 두렵고 막막하지만 막상 넘고 나면 별것 아닌 산 하나를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