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주자 간 신경전이 레이스 초반부터 불이 붙은 모양새다. ‘원조 소장파’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가 신진 후보 측면 지원에 나서자, 다른 후보들은 견제구를 날리며 대응에 나섰다. 당대표 후보들은 화물트럭에 전기차까지 동원하면서 하루 종일 꼬리를 무는 ‘차(車)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 시장은 23일 밤 페이스북에 ‘유쾌한 반란을 꿈꿉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0선, 초선들의 발랄한 생각과 격식 파괴, 탈권위적 비전을 접하며 우리 당의 밝은 미래를 봤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웅 김은혜 의원과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 등 신진 3인방을 공개 지지한 것이다. 오 시장이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개적인 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다.
오 시장이 공개적으로 신진 3인방 지지에 나선 건 4·7 재보궐선거 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간접 지원한 중진 의원들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보궐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인 이 전 최고위원을 지지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전 최고위원은 오 시장 캠프의 ‘2030 청년유세단’을 이끌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 지사도 24일 페이스북에 “젊은 바람이 전당대회를 휩쓸고 있다. 바람의 동력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라며 신진 3인방을 측면 지원했다.
반면 당권주자인 나경원 전 의원은 오 시장의 지원사격을 견제했다. 나 전 의원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시정이 바쁠 텐데 왜 이런 언급을 하셨냐는 생각이 든다”며 “전당대회에 너무 관심이 많다”고 꼬집었다.
중진과 신진 간에는 종일 ‘차 논쟁’이 이어졌다. 나 전 의원은 “이번 당대표는 멋지고 예쁜 스포츠카를 끌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짐을 잔뜩 실은 화물트럭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가야 된다”고 말했다. 신진을 ‘스포츠카’, 자신 등 중진을 ‘화물트럭’에 빗댄 것으로 해석된다. 나 전 의원 측은 “우리 당의 현재 상태가 ‘예쁜 스포츠카’가 아닌, ‘화물트럭’이며 나 후보가 그런 화물트럭을 끌고 갈 적합한 후보임을 주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은혜 의원은 “화물트럭도 성능이 좋아야 대선에서 사고가 안 생긴다”며 “노후경유차에 짐을 실으면 언덕길에서 힘을 못 쓰고 운행제한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을 ‘노후경유차’에 비유해 맞받아친 것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최근 전기차를 주문한 점을 소개하며 “깨끗하고, 경쾌하고, 짐이 아닌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고, 내 권력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주호영 의원은 “차가 문제가 아니라 운전자가 문제”라며 “스포츠카든 화물차든 전기차든 베스트 드라이버를 모시고 정권교체를 꼭 이루겠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