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포럼정치’… 대권주자들 勢 불리기 경쟁

입력 2021-05-25 04:03

내년 대선을 향한 주자들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가열되면서 각 유력 대권주자를 지지하는 포럼조직이 앞다퉈 출범하고 있다. 대규모 포럼을 조직해 당 안팎의 지지 세력을 결집, 적극적으로 세를 과시하는 방식이 일종의 대권 공식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는 상반된 시각이 제기된다. 아직 미숙한 한국의 정당정치 현실에서 이른바 ‘포럼정치’를 통해 대권주자들이 소속 당론에 구애받지 않고 정책을 제시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다. 반면 포럼이 세 불리기용 조직경쟁에 활용되면서 기존 계파정치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대권주자 지지포럼은 이달 초부터 더불어민주당 유력 주자들을 시작으로 줄줄이 출범하고 있다. 여권 내 대권주자 중 1강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우 5월 들어서만 그를 지지하는 포럼 2곳이 출범했다. 지난 13일 발기인 1만5000명 규모의 ‘민주평화광장’이 출범한 데 이어 20일에는 이재명계 현역 의원 중심인 ‘성장과 공정포럼’을 띄웠다. 다음 달 10일 국내외 지원조직 성격의 ‘공명포럼’까지 발족하면 총 3개의 포럼이 이 지사의 대권행보를 지원하게 된다.

다른 주자들 역시 경쟁적으로 포럼을 내는 중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전국 17개 시·도마다 ‘신복지’라는 이름을 건 포럼을 출범시키고 있고,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연대와 공생’도 운영 중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총리 시절 만든 ‘광화문포럼’을 기반으로 대권행보에 나서고 있다. 야권에서는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공정과 상식의 회복’이라는 포럼이 출범했고,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 그를 지지하는 의원·전문가 모임 ‘희망22’가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주자별 전문가 자문그룹까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포럼정치 지형은 한층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포럼정치가 하나의 정치 문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지금의 정당정치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24일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서로를 일단 견제·비판하고 보자는 기조가 깔려 있고, 이런 식의 정당정치 문화 속에서는 대권주자들이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며 “이때 포럼이라는 형식이 제3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포럼의 명칭이나 토론회 주제에서는 각 주자가 내세우는 정책적 지향점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이 지사의 경우 성장을 위한 키워드로 '공정'을 제시하는 동시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을 첫 주제로 논의했다. 윤 전 총장 측 포럼 명칭인 공정과 상식의 회복은 그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세울 당시 앞세웠던 가치다.

이 전 대표는 포럼을 통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인 '신복지'를 부각시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정 전 총리 역시 지난 11일 열린 광화문포럼 기조 강연에서 '국민 1인당 능력개발 지원금 2000만원 지급' 등 정책 아이디어를 내놨다.

하지만 포럼정치는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각 대선주자가 지지기반을 넓히고 세 경쟁을 펼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포럼에서는 특정 계파 인사를 영입하거나 최대한 많은 현역 의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인 게 현실이다.

한 초선의원은 "구태의연하다고는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부터 지자체 소속 정치인, 전문가들이 얼마나 확보돼 있는지를 비교해 보고, 어떤 주자가 현재 대세인지 판단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대선캠프 외에도 '더불어포럼' '정책공간 국민성장' '10년의 힘'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국민 아그레망' 등 기능과 성격이 각각 다른 복수의 포럼조직으로부터 지지와 지원을 받았다.

포럼을 통해 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같은 당 주자들의 참여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던 일부 의원의 이름이 서로 성격이 다른 포럼에 중복해 등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소위 '정보지' 형태로 정치권에서 도는 대권주자별 포럼 명단에 엉뚱하게 이름이 오른 인사가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박 평론가는 "포럼정치가 정책 발굴을 빙자한 정치 세력화를 위한 준정당화 작업이 될 경우 국민 입장에서는 신선하지 않은 낡은 방식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일부 군소 후보들은 전형적인 세 불리기식 포럼정치를 탈피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여당 내에서 가장 먼저 대권출마를 선언했던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국민은 줄 서 있는 국회의원의 머리 숫자를 보지 않는다"며 "대선을 준비하는 분들은 세와 조직을 과시하려고 하는데, 매우 낡은 정치 문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대권주자들의 등판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라 각자의 포럼을 앞세우는 경향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7월을 전후해 본격적인 대권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원희룡 제주지사는 싱크탱크 코리아비전포럼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2018년 말 보수진영의 대표 싱크탱크를 표방하며 '프리덤 코리아' 포럼을 출범했었다.

정현수 백상진 이가현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