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싹쓸이에 매대 텅텅… 학생 울리는 ‘희망급식바우처’

입력 2021-05-25 00:02
한 학부모가 24일 서울시내 한 편의점에서 희망급식바우처로 살 수 있는 품목을 고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서울 주택가와 학원가 편의점 곳곳에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 도시락이나 구운 계란 등 인기 품목은 학생들 등하교 시간엔 구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급식을 못 먹는 학생들을 위해 시작한 ‘희망급식바우처’ 사업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일부 학부모들이 ‘편의점 쇼핑’에 열을 올리는 탓에 정작 학생들은 편의점에서 한 끼 때우기도 어려워졌다.

서울 노원구 학원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46)씨는 24일 “지난 토요일 점심 무렵에 중고생 손님이 많이 몰렸는데 희망급식바우처로 살만한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는 이미 아침 일찍 동이 났다”며 “주말인데도 오전 7시쯤부터 오셔서 도시락, 과일, 요구르트 같은 걸 몇만원어치씩 사가니 정작 학생들은 제대로 된 걸 살 수 없게 되더라”고 전했다.

희망급식바우처는 편의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 한 명에게 10만원씩 지급했다. 코로나19로 매일 등교하지 못하면서 급식을 못 먹는 학생들의 식사 결손을 우려해 시행하는 사업이다. 포인트는 편의점에서만 쓸 수 있고, 영양 측면을 고려해 도시락, 제철과일, 흰우유, 샌드위치, 샐러드 등 10개 카테고리 식품 가운데 일부만 살 수 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 16일까지 사용 가능하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바우처 사용이 시작된 20일 오전 11시부터 편의점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서울 송파구 한 편의점 직원은 “첫날부터 평소보다 손님이 1.5배 정도는 많아졌는데, 오후엔 물건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시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반응이 뜨거운 만큼 뜻밖의 부작용으로 학생들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들이 바우처로 ‘사재기 쇼핑’을 하면서 정작 학생들이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다.

송파구의 또 다른 편의점 직원은 “평소 편의점을 자주 방문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아침 일찍 오셔서 제품들을 싹쓸이해 가기도 한다”며 “이르면 오전 9시 전에 인기 많은 제품은 품절된다. 주변 편의점을 다 돌며 쇼핑하는 분도 봤다”고 했다.

편의점 업계는 바우처 사업에 대응해 평소보다 발주량을 15~30%가량 늘렸다. 서울시교육청은 한국편의점산업협회 등과 협의해 구매 품목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마시는 요구르트처럼 10개 카테고리 안에서 영양 측면에 문제가 없는 제품들을 바우처로 살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편의점에서만 바우처를 쓸 수 있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편의점으로만 사용처를 제한한 취지는 이렇다. 급식처럼 영양 균형을 고려한 식사와 간식이 제공 가능하고, 접근성이 높은 데다 전산으로 통합 관리가 가능한 채널이 편의점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불만 접수가 이어지고 있어 다른 방안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며 “제로페이 사용이 가능하고, 아이들에게 균형 있는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