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재 목사의 ‘생명 설교’] 완전이 불완전에게

입력 2021-05-26 03:05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다시 사신 완전하신 예수님이 불완전한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다.

완전하신 예수님이 불완전한 제자들에게 찾아와 주시려 했던 것 중의 하나는 평강이었다. 평강의 반대말은 불안이다. 그리고 불안은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다. 인간의 불안은 에덴에서의 범죄로 인한 아버지 하나님과의 단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를 다시 화목하게 하셨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불안감을 떨쳐내고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된 것이다.

제자들은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 의심의 반응을 보인다.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속고 속이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의심은 삶의 방식이 됐다.

예수님은 의심이라는 불완전함을 가진 우리에게 부인할 수 없는 완전한 확신을 주신다. 그를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 이 약속에 따라 오늘도 그를 만난 자들은 살아계시는 완전하신 예수님을 확신하며 기쁨 가운데 산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확신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사명을 선포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사명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깊은 괴로움 중에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를 고백하며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실패했다. 가룟 유다는 배신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다. 제자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런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다시 완전한 사명을 전해주셨다.

오늘날 사명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행과 시류에 흔들리며 방황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고 그와 하나 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완전한 사명을 회복한다.

완전한 사명을 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쉰다. 이것은 창세기 2장의 창조의 생기,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에 생명을 주는 생기와 일치하는 표현이다. 완전한 생명의 공급자 예수님은 죽어 있던 제자들에게 생명과 능력을 불어넣으셨다. 그리고 이것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임재를 통해 완성되었다.

불완전하여 생명 없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이 부어지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된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약속하신 성령을 구하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신다.

예수님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위는 누구에게 있나.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권한이다.

죄를 사하는 권한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완전한 권한을 가지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런 권위가 없는 불완전한 제자들에게 그 권한을 주셨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과 같은 작은 예수의 삶, 참된 제자의 삶을 주신 것이다.

완전한 용서는 불완전한 나에게 완전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와 하나 되어 작은 예수가 될 때 가능해진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자. 증오와 분열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용서하여 화목케 하라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우리가 되자. 그리하여 생명 없는 이 시대를 이겨나가자.

(미국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