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이지만,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질병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보다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해치고, 사랑하는 가족의 짐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서 기인한다. 치매 인식도 조사에서 치매가 암을 제치고 노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꼽힌 건 이 때문일 게다.
이제 이런 두려움은 더 이상 몇몇 노인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는 치매환자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 86만명이었던 치매노인은 2030년 136만명, 2050년 302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치매환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는다는 것이다. 이들 가족의 치매치료와 돌봄으로 인한 부담은 최악의 경우 노인학대, 간병살인 등 가슴 아픈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두려움과 부담에 대한 응답으로 정부는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경증치매도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인지지원등급’을 2018년 1월 신설하고,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제도 개선을 통해 치매 의료비와 요양비 부담을 대폭 낮췄다. 치매환자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과 치매안심병원도 확충했다. 2019년 12월까지 전국 256개 시군구마다 설치가 완료된 치매안심센터에는 47만명의 치매환자가 등록돼 서비스를 받고 있고, 올해 4월까지 총 376만명이 이용하는 등 지역 치매관리의 허브로서 자리 잡았다.
향후 치매정책은 그간 치매국가책임제를 통해 갖춰진 공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치매환자와 가족이 살던 곳에서 통합적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도 이런 목표하에 다양한 과제를 마련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 치매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도 지역의 가용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치매안심센터가 지역사회 치매관리의 ‘총괄 코디네이터’가 돼 국민건강보험, 행복e음과 같은 보건복지정보시스템을 연계하고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할 것이다. 지역 내 병원과 복지시설, 민간기관과도 긴밀한 협조 체계를 갖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적극 발굴하고 서비스를 지원하도록 할 계획이다.
‘보이지 않는 제2의 환자’로 불리는 치매환자 가족의 돌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돌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이어나가려고 한다. 치매환자 가족이 전문의를 통해 정신건강 상담을 받고 치매환자를 돌보는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치매가족휴가제의 이용일수 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가정에서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가족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한 코로나19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자택에서 비대면 치매검진과 인지강화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거리두기가 가능한 숲체험이나 사회적 농장 등 야외 치유 활동 프로그램도 연계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지역 특성에 맞게 운영 중인 치매안심마을도 최소한의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우수 사례를 확산해 보다 내실 있는 치매 친화적 지역사회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노인은 누군가의 ‘가족’이며, 언젠가의 ‘나’이다. 치매를 책임진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책임지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어느덧 시행 4년차를 맞는 치매국가책임제의 진정한 완성은 치매라는 질병을 나와 내 가족의 일이라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 있다. 정부는 치매환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가족도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치매환자와 가족,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행복한 치매안심사회 구현을 위한 길에 포용사회의 일원으로서 국민 모두가 발걸음을 같이해 주시길 바란다.
양성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