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면서 이탈 자금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 확대 상황에서 최근 급등락으로 투자 매력이 약해진 만큼 금을 비롯한 전통적 안전자산과 물가상승 수혜 자산으로 자금이 옮겨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23일 보고서에서 “팬데믹 상황에서 암호화폐 시장은 유동성을 일부 흡수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며 “지금처럼 암호화폐가 흔들릴 경우 그곳에 머물던 자본이 다른 곳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암호화폐 가격은 지난해 3월 저점 기록 후 최근 고점까지 적게는 10배, 많게는 400배 넘게 상승하며 초고수익을 쫓는 시중 자금을 빠르게 흡수했다.
암호화폐 시장을 빠져나온 자금은 금과 석유 금속 등 물가 관련 투자상품으로 향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통 경기회복 초기에는 앞으로 좋아질 경기를 미리 반영하는 주식 등이 주목을 받다가 이후에는 물가 상승을 염두에 두고 관련 상품 가격 오름세에 베팅하는 경향을 보인다.
강 연구원은 “갈곳 잃은 돈이 암호화폐 외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경우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시장 내에서는 조선, 철강처럼 최근까지 구조조정을 거친 물가 관련주가 수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암호화폐의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이 의심받으면서 전통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관심도 재차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선임연구원은 “암호화폐 가격 급락으로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약해지며 금에 대한 상대적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며 “비트코인으로 옮겨갔던 인플레이션 헤지용 금 투자 수요가 최근 돌아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현물 금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온스당 1874.5달러에 거래되며 1월 7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6월물 금 선물 가격도 연초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해 8월만 해도 금값은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다 올해 3월 초 1680달러 수준까지 미끄러졌다. 이는 암호화폐의 가격이 오른 때와 겹치는데 최근 반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투자상품인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신탁) 총자산은 이달 들어 급감한 반면 세계 최대 금 투자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골드셰어즈는 자금 유입이 크게 늘었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락하는 상황에서 미국 헤지펀드들은 미국 성장주와 신흥국 주식을 팔고 미국 가치주를 사들이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 이탈 자금이 당장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무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주택시장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정착될 경우 은행의 소극적 대출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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