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8)씨는 2019년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집주인 요구에 서울 은평구 빌라로 이사했다. 11년째 살던 서울 용산구 후암동 빌라촌을 떠나 또 빌라로 들어갔다. 직장과 가까운 용산구를 떠나려니 부담스러웠지만 다른 선택지를 찾기 어려웠다. 후암동 빌라 전세가격이 3억원대로 급등한 탓이었다. 김씨는 “19년째 들고 있는 청약 통장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집값 급등에 따른 ‘탈서울’의 원심력은 서울 외곽뿐 아니라 중심부까지 강력하게 작용했다. 직격탄을 맞은 김씨와 같은 사례가 도심 곳곳에서 속출했다. 집값 폭등에 떠밀린 용산구 주민들은 서대문·동대문구로 이주했고, 다시 은평·도봉구로 밀려 나가는 흐름을 보였다. 성동구 주민들은 동대문구를 거쳐 서울 동북권으로 떠밀렸다. 국민일보가 2017~2020년 통계청 국내인구이동통계와 KB부동산의 평균 전세·매매 가격 등을 비교한 결과다.
은평·서대문구로 밀린 용산구 사람들
용산구 주민들이 다른 자치구로 이주한 이유는 전셋값 폭등 때문이었다. 용산구의 ㎡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KB부동산 기준 2017년 1월 569만8000원에서 2020년 12월 712만8000원으로 급상승했다. 25.1% 오른 것이다. 용산구 바로 옆에 있는 성동구의 전셋값 상승세는 더 가팔랐다. 성동구 전세가격은 같은 기간 543만3000원에서 759만3000원으로 뛰었다. 상승률은 39.8%였다.
집값 부담에 떠밀린 용산구 사람들은 서울 은평구(1387명), 경기도 고양시(890명), 김포시(870명) 등으로 이사했다. 이는 순유출 기준 최근 4년 인구 이동 통계를 집계한 것이다. 용산구에서 은평구로 순유출한 인원이 1387명이라는 것은 ‘용산구에서 은평구로 나간 인원이, 은평구에서 용산구로 들어온 인원보다 1387명 더 많다’는 뜻이다.
용산구 사람들이 옮겨간 지역의 공통점은 이들 지역이 용산구에 비해 집값이 낮다는 점이었다. 이들 지역은 2020년 말 용산구보다 평균 아파트 전세가격(전용면적 84㎡ 기준)이 1억6000만원 이상 낮았다. 고양시의 평균 전세가격은 용산구의 50% 수준이었다. 김포시는 용산구의 40% 수준이었다. 현재 이들 지역 간 격차는 더 벌어진 상태다.
최근 4년간 전세가격이 비교적 낮은 곳으로 이주하는 ‘하향 이동’ 경향은 뚜렷했다. 하향 이동률은 2017년 86.1%에서 2018년 93.3%로 커졌다.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100%였다. 하향 이동률은 전세가격이 더 낮은 곳으로 이주한 인원 비율이다. 하향 이동률이 100%라는 것은 ‘순유출 상위 10곳이 모두 이전 거주지보다 전세가격이 싼 곳’이라는 의미다. 2017~2020년 용산구 사람들의 순유출 지역 상위 10곳은 서울 중구 1곳을 제외하면 모두 용산구보다 전세가격이 낮은 곳들이었다.
2020년 기준 용산구의 순유출 인구는 서울 서대문구(474명), 은평구(384명), 경기도 고양시(260명) 등 순으로 많았다. 서대문구로 이주한 이들 중에는 용산구 청파동(85가구)과 원효로1동(82가구) 주민들이 많았다. 2020년 청파동과 원효로1동을 떠나 서대문구로 이주한 용산구 사람들(167가구) 중 53가구(31.7%)는 서대문구 충현·북아현동에 둥지를 틀었다. 충현·북아현동의 아파트 평균 전세 실거래가는 청파동과 원효로1동보다 낮은 편이었다. 예를 들어 2020년 북아현동 한 아파트(전용면적 84.93㎡)의 평균 전세 실거래가격은 7억4000여만원으로, 원효로1동의 같은 브랜드 아파트보다 1000만원 가량 낮았다.
청파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은 낡았는데 전세가격만 계속 오르니 같은 가격이면 차라리 다른 지역 아파트나 신축 빌라로 가는 게 낫겠다고 보고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공인중개사는 “용산구 신축 아파트의 경우엔 2년 사이에 전세가 3억원 이상 올라 이를 감당 못 해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로 이주한 40~50대들도 많았다”고 했다.
은평구를 거쳐 경기도로 빠져나간 용산구민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순유출 통계를 보면, 은평구 주민들은 최근 4년간 경기도 고양시(2만208명), 파주시(2628명), 김포시(2367명)로 많이 빠져나갔다. 서울 한복판에서 시작한 탈서울 경로 중 하나가 ‘용산구→은평구→경기도’인 셈이다. 장희순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3일 “소위 ‘영끌’ 해도 서울 집을 못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원주민이 쫓겨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구보다 더 오른 성동구 ‘하향이동’
성동구 주민들의 집값 압박은 용산구에 비해 더 높았다. 성동구 집값은 2017~2020년 용산구뿐 아니라 광진구보다 상승 폭이 컸다. 이 기간 ㎡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KB부동산 기준)은 용산구와 광진구가 각각 143만원, 212만1000원 상승했다. 성동구는 216만원 올랐다.
집값 폭등을 감당하지 못한 성동구 주민 상당수도 집값 부담이 덜한 곳으로 이주했다. 최근 4년 성동구 순유출 상위 3곳은 서울 동대문구(4487명), 광진구(3535명), 강동구(2380명)이다. 동대문구는 성동구와 접해 있는 곳이지만, ㎡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 차이는 계속 벌어졌다. 격차는 2017년 115만원, 2018년 126만원, 2019년 130만원, 2020년 158만원으로 커졌다.
성동구의 하향 이동률은 2017년 100%, 2018년 81.9%, 2019년 70.4%, 2020년 80.4%로 나타났다. 성동구 아파트에서 6년간 살다가 2020년 동대문구로 이주한 구모(40)씨는 “외벌이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전셋집에 계속 살다 보니 내 자산은 그대로였다”면서 “갑자기 너무 올라버린 전셋값을 더 감당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주민들은 2017~2020년 동대문구에 비해 전세가격이 낮은 중랑구로 가장 많이 이주했다. 순유출 기준 4137명이 중랑구로 빠져나갔다. 동대문구와 중랑구 간 ㎡당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KB부동산 기준) 차이는 2017년 1월 60만원에서 2020년 12월 100만원으로 벌어졌다.
동대문구 사람들은 중랑구 다음으로 성북구(3170명), 경기도 남양주시(3022명)로 많이 빠져나갔다. 전세가격이 비슷한 성북구로 이주하거나 탈서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성북구에서는 2017~2020년 경기도 남양주시(2630명), 의정부시(2277명), 서울 강북구(2166명)로 빠져나가는 흐름이었다. 모두 전세가격이 성북구보다 낮은 곳들이었다. 같은 기간 강북구 주민들은 도봉구(3931명), 의정부시(3631명), 남양주시(1902명) 등으로 빠져나갔다.
이 같은 인구 이동은 ‘성동구→동대문구→(중랑구)→경기도’ 또는 ‘성동구→동대문구→(성북구)→(강북구)→(도봉구)→경기도’라는 탈서울 흐름으로 요약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외곽으로 밀리던 와중에 곧바로 탈서울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슈&탐사1팀 김경택 문동성 구자창 박세원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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