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뜻밖의 전통

입력 2021-05-24 04:07

토요일이면 ‘놀면 뭐하니?’의 유야호(유재석)와 초대손님 의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전통 코드를 챙기되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뉴트로(New-Retro) 트렌드가 얼마나 갈까 반신반의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지고 젊은층에게 전통은 이제 일상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필자가 자라던 시절엔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고 지키고 발전시켜 우수성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뉴스는 마치 문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소식으로 들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문화의 다양성 보존이 취지이지 우수성을 견주는 올림픽이 아님에도 말이다.

2000년대까지 한복의 입지는 열악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어서 구체적인 방법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프랑스로 갔어야 했는데 새 언어를 배울 자신이 없어 영국으로 우회했다. 졸업 논문에서 전통을 주제로 하려고 하자 지도교수의 첫 질문은 전통을 꼭 계승해야 하는지였다. 문화유산은 박물관에 있고 전통 방식은 이미 극복됐는데 생산성 낮은 옛 방식을 굳이 왜 답습하냐는 의미였다.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다운 생각이었다. 그 질문을 받은 후에야 그들에게 전통은 스스로 넘어선 추억할 옛일이고, 우리의 전통은 외부 힘에 의해 강제로 단절된 탓에 보존과 계승이 더 갈급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더 들여다보니 일제 강점기 교육을 받았던 세대는 우리 전통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고, 1960~1970년대 경제 성장기에는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이 전통을 외면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세대에게 전통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열등감이나 사명감 대신 새로운 문화 코드로 자유롭게 즐기다 보니 뜻밖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그 모습이 슬며시 밖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에 일생을 보낸 분들의 수고와 한옥에 사느라 수리도 함부로 못 하던 불편들이 지금이라도 빛을 내기 시작해 참 다행이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