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공유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를 추적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범죄수사과 조재영 수사관(38)은 2013년까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일했다. 스팸 문자 대응팀 소속으로 스팸 문자를 규제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스팸 문자를 발송하는 이들은 늘 그보다 한 발 앞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고 수법도 진화했다. 신고 접수돼 서버에 저장된 스팸 문자를 바라보던 조 수사관은 어느 날 ‘이놈(발신자)’들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013년 경찰청 사이버수사 경력직 특별채용에 지원했고, ‘사이버수사관’에 임용됐다. 문자가 아닌, 사람(범죄자)을 쫓기 시작한 것이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던 2015년 경찰도 가상화폐 관련 범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가상화폐 전담 요원’이라고 생각한 조 수사관은 전국에 접수된 가상화폐 관련 범죄를 모두 조회해 공부했다. 그러던 중 2017년 경찰청은 가을 미국 국토안보부로부터 ‘한국에서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가 운영되는 것 같다’는 제보를 받았다. 다크웹에 개설된 ‘웰컴투비디오’ 사건이었다. 128개국에서 회원수만 120만명이 넘었다. 조 수사관은 해당 사이트가 비트코인을 받는다는 점에 주목해 그 흐름을 추적한 후 운영자를 찾아냈다.
지난 3월에도 그는 랜섬웨어(데이터를 암호화한 뒤 돈을 요구하는 악성코드)를 유포한 피의자를 검거했다. 두 사건 모두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로 거래가 이뤄졌는데, 조 수사관의 2년 여의 추적에 꼬리가 밟혔다.
그는 “수사 기법을 다 공개할 순 없지만 경찰은 수년간 쌓은 가상화폐 추적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경찰청은 외국 유명 가상화폐 분석 회사의 분석 도구 외에도 자체 개발한 추적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가상화폐의 전송 이력 등 파편화된 정보를 시각화할 수 있고, 자금 흐름을 따라가며 수사망을 좁힐 수 있다.
범죄 수익금이 거쳐간 가상화폐 거래소를 확인해 계정 정보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가상화폐가 현금화된 지점을 찾아 역추적에도 나선다. 가상화폐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때문에 돈이 오간 공범은 물론이고 전체 범죄 수익금 규모 등도 파악하기 쉽다.
가상화폐 추적 노하우를 인정 받은 조 수사관은 지난 19일 ‘제30회 유엔 범죄예방 및 형사사법위원회’ 정기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랜섬웨어 유포자 검거 사례를 발표했다. 유엔 마약·범죄 사무소(UNODC)가 한국 경찰의 수사 기법을 전수받겠다며 직접 발표를 요청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수사 기관과 민간 보안업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그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악용되는 다크웹이나 가상화폐를 활용한 범죄라도 반드시 꼬리가 잡힌다고 설명했다. 조 수사관은 “범죄를 숨기려는 피의자들에게 온라인상에서 찾아낸 증거들을 들이밀면서 자백을 받아낼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며 “다크웹이나 가상화폐도 결국엔 추적 되고 검거된다.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