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을 넘었더니 오래된 앙숙이 앞을 막아섰다. 하필이면 중요할 때마다 지겹게 발목을 잡은 ‘이웃집 웬수’다. 선두를 탈환한 지 사흘 만에 지역 맞수 포항 스틸러스와 ‘동해안 더비’를 치를 울산 현대 이야기다.
울산은 22일 홈구장 ‘빅크라운’(울산문수축구경기장의 애칭)으로 포항을 불러들여 2021 하나원큐 K리그1 18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169번째인 둘 사이 맞대결은 K리그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더비 경기다. 이번 경기는 공중파 방송사 KBS가 생중계할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울산은 19일 적진에서 전북에 4대 2 승리를 거두며 1위로 올라섰다. 울산이 선두를 차지한 건 지난 3월 14일 이후 처음이다. 울산은 2019년 5월에도 현대가(家) 더비에서 승리하고 선두로 올라섰지만 결국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시즌 말미 전북에 우승을 내준 경험이 있다.
‘웬수’끼리는 닮았다
울산과 포항의 자랑은 강력한 측면이다. 나란히 올림픽대표팀 차출 후보인 공격수 이동준과 송민규가 각 팀 공격에서 핵심을 맡고 있다. 이동준이 속도와 날카로움으로 상대 측면을 부숴버리는 스타일이라면 송민규는 압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유려한 개인기와 전문 공격수 못잖은 결정력이 일품이다.
다른 국내 선수들도 뜨겁다. 울산은 지난 경기에서 2000년생 유망주 윙어 김민준이 신들린 드리블 돌파로 골을 터뜨리며 또 다른 공격 선택지라는 걸 보여줬다. 포항도 베테랑인 ‘꽃미남’ 공격수 임상협이 수원FC전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민준은 특히 지난 3월 13일 열린 동해안 더비에서도 선제골을 터뜨린 경험이 있다.
다만 이는 외국인 공격진의 활약이 국내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울산은 그나마 중앙공격수 힌터제어와 플레이메이커 바코가 골과 도움을 기록하며 점점 살아나고 있지만 포항은 크베시치와 타쉬의 활약도가 기대보다 부족하다. 지난해 포항이 자랑한 외국인 선수진의 파괴력이 올 시즌에는 실종됐다는 평가가 다수다.
칼도, 급소도 닮은 웬수
울산은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이끈 골잡이 주니오의 빈자리가 크다. 중계를 맡은 한준희 해설위원은 “힌터제어는 주니오와 성향이 다르다. 전문 골잡이는 아닌 듯하다”고 평하면서 “울산으로서는 힌터제어가 가진 다른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쪽으로 전술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 위원은 “크베시치와 타쉬는 모두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들이 이뤘던 조화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포항에서 송민규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건 두 외국인 선수가 아직 활약이 부족해서이기도 하다”면서 “임상협은 기대치보다 200% 이상 잘하고 있다. 두 외국인 선수가 해줘야 한다”고 봤다.
김기동 포항 감독은 20일 사전 기자회견에서 “(활약이 좋은) 송민규나 임상협과 달리 외국인 선수들은 자가격리가 끝나고 합류했다. 아직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명보 울산 감독도 “소통이 어렵다 보니 외국인 선수 본인들도 더 조급함이 있을 것”이라며 “그들이 좋아하는 걸 다른 동료도 맞춰서 좀 더 활용해보겠다”고 했다.
‘수비’가 결과 정할까
두 팀 모두 더 심각한 잠재적 문제는 수비다. 포항은 핵심 수비수 하창래가 입대한 뒤 한동안 수비 약점이 두드러졌다. 김기동 감독도 “한참 경기력이 좋지 않았을 때 실점이 많아서 그걸 신경 써왔다. 최근 7경기 3실점해서 (그나마) 만족했는데 지난 경기(수원F전)에서 3실점했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울산 역시 김기희와 불투이스가 주전인 중앙 수비진의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다. 한 위원은 “두 선수 모두 기복이 있는 편이고 그 앞을 지키는 원두재나 풀백 설영우도 불안할 때가 있다. 전북전은 특히 그랬다”면서 “최근 경기에서 공수 간격이 넓어진 데다 그런 수비 실수까지 군데군데 눈에 띄는 게 약점”이라고 설명했다.
울산은 경기 뒤 또 다른 걱정을 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27일에 올림픽대표팀 후보군이 백신 2차 접종을 해야 한다고 어제(19일) 통보받았다. 이틀 뒤인 29일이 제주 유나이티드와 경기인데 올림픽대표팀 후보군인 6명을 전력에서 제외하고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며 “현장을 배려해 운영의 묘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