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사유재산이냐” vs “야밤에 싹쓸이”…제주 ‘해루질 몸살’

입력 2021-05-21 00:06
제주 해루질동호회 회원들이 지난 18일 제주도청 앞에서 ‘어촌계만 국민이냐, 탁상행정 규탄한다’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제주도의 비어업인 야간 해루질 금지 조치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라 몇 개 땄는데 이것도 안돼요? 바다가 무슨 사유재산입니까.” “다들 재미 삼아 따가면 우린 뭘 먹고 살아요? 고령 해녀들은 깊은 바다에 못 들어가요.”

얕은 바다에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이른바 ‘해루질’ 논란이 제주에서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일부 해루질동호회 회원들의 ‘프로급 싹쓸이’ 해루질이 기승을 부리자 제주 해안마을 어촌계가 “어장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나섰고, 급기야 제주도가 야간 해루질 금지라는 초강경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양측의 대립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제주도의 이 같은 조치를 폐기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온라인 신문고 게시판을 도배하기까지 했다.

제주도는 지난달 9일 야간 마을어장에서 수산동식물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비어업인의 포획·채취 제한 및 조건’을 고시했다. 일몰부터 다음 날 일출 전까지 낚시를 제외한 일체의 수산자원 채취를 금지한 것이다.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시·도지사가 강화된 조치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한 수산자원관리법에 근거한 것으로, 위반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제주도는 “일부 해루질동호회는 단순 레저활동을 넘어 어업에 준하는 포획을 하고 있다”며 “고령 해녀나 마을 어촌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무분별한 해루질을 막는 게 공익에 부응한다는 설명이다.

해루질동호회 회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제주도의 조치는 레저인들의 행복추구권에 심각한 제약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아무리 마을어장이라 해도 자연산 수산물 전부에 대해 어업권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에는 고시 폐기를 주장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18일 제주도청 앞에서 반발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행정소송까지 예고한 상태다.

‘야간’ 해루질 논란은 문어 소라 전복 해삼 등이 대부분 야행성이기 때문이다. 낮 동안 바위 틈에 몸을 숨겼다가 밤이면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야간에 손쉽게 대량으로 채취할 수 있다. 슈트와 수중 랜턴 등 기본 장비만 갖추고 바다로 들어가면 된다. 오래전부터 제주에선 해루질을 놓고 주민과 외지인이 다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왔다.

제주도의 고시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실상 제주 바다를 해녀들만을 위한 전용 바다로 쓰겠다는 조치 아니냐는 반발이다. 고시대로라면 밤에 맨손으로 보말을 채취하는 관광객까지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전면 금지보다 채취 수산물의 양을 제한하는 게 합리적이란 대안도 나온다. 그러나 어촌계들은 밤마다 레저인들을 일일이 검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맞선다.

지난달 9일 제주도 고시 공고 이후 야간 해루질로 벌써 4건이 적발돼 80만원 내외의 과태료가 개별 부과됐다.

이런 가운데 해양수산부는 비(非)어업인 수산물 포획·채취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레저인과 마을 어촌계 주민들이 모두 동의할 만한 합리적 방안을 찾기 위해 외국 사례를 수집해 연내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루질을 둘러싼 갈등은 제주에서 가장 심한 현상이지만, 강원도 등 해안을 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전부 발생하는 문제”라며 “생업 지원과 레저 활동 보장의 적정선을 찾아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