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금까지 털었다”… 공포장서 한탕 노리는 코인 개미들

입력 2021-05-21 00:05

지난 19일 코로나19 이후 최악 폭락세에 비트코인 패닉셀이 나타났지만 반대로 저점 매수를 노리고 뭉칫돈을 넣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일 비트코인 거래량은 공포 매도, 저점 매수가 겹치면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과연 ‘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라’는 투자업계의 오랜 격언은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을까.

이날 비트코인은 4200만원선까지 수직 낙하하며 20.26%의 낙폭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 자본시장이 폭락한 지난해 3월 12일 ‘검은 목요일’(-37.12%) 이후 가장 큰 추락이다. 2017년 9월 국내 거래소 업비트가 개장한 이래로는 8번째로 높은 수치다. 미국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도 정확히 3만 달러를 터치한 뒤 일부 반등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가 제공하는 암호화폐 시장의 ‘공포-탐욕 지수’는 검은 목요일(0.20) 이후로 가장 낮은 0.43을 기록했다. 0에 가까울수록 극단적 공포를 의미한다.

이처럼 암호화폐 시장이 휘청하며 대부분 종목의 시세가 극단적으로 빠졌지만, 일부 투자자는 뭉칫돈을 짊어지고 시장에 진입했다. 직장인 김모(27)씨는 20일 “비트코인이 7000만~8000만원일 때는 도저히 매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다시는 오지 않을 저점으로 보인다. 비상금을 털어 이 기회에 코인을 사두고 3년이고 4년이고 묻어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공포장에서 드러난 저점 매수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업비트에 따르면 12~18일 1주일간 평균 9609.5개에 불과하던 비트코인 매수량은 19일 하루에만 2만56개로 배 이상 뛰었다. 빗썸에서도 18일 2709개였던 비트코인 매수량이 19일 5867.5개로 116% 증가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포장에서 강해지는 매수세는 ‘김치프리미엄(김프)’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와 해외 거래소 비트코인 가격 차를 의미하는 김프가 상승한다는 것은 해외 투자자가 투매하는 동안 국내 투자자는 되레 매수에 나섰다는 뜻이 된다.

지난 1주일 7~12%를 횡보하던 비트코인 김프는 19일 최고 25.4%까지 올랐다. 전날(9.94%) 대비로 보면 155% 폭등했다. 리플(32.8%), 도지코인(46.7%), 폴카닷(54.4%), 비체인(92.9%) 등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암호화폐)에서도 비정상적인 수준의 김프가 관측됐다. 최대 92.9%에 달하는 김프는 단순 투심으로 보기에는 무리다. 이같은 매수세에 힘입어 4259만5000원까지 하락했던 비트코인은 하루만인 20일 장중 최고 5207만6000원까지 회복했다.

저점 매수 공세에 전문가들은 적지않은 우려를 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암호화폐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주식은 기본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만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면서 “내재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시세 추세 파악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암호화폐 시세가 대폭 하락 후 반등을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저점과 고점을 예측해서 거래하기 때문이 아닌, 순전히 ‘내린 시세는 다시 오른다’는 기대감이 끌어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양쪽 시장이 구조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기에 주식 투자에서의 원칙이 암호화폐에 적용되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홍 교수는 “기업의 주가가 폭락한 뒤 오를 수 있는 동력은 그 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이익, 배당, 실적 등 미래 가치”라며 “반면 암호화폐 시장은 ‘누군가가 내 코인을 더 비싼 값에 사줄 것이라는 기대’ 하나로만 성장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믿음이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공포에 사는 게 아니라 되레 팔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