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공정 이슈가 유독 논란이 됐다. 공정의 가치를 무너뜨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등장한 만큼 어느 정부보다 정의와 공정, 평등을 강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사는 국민을 설레게 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지금은 실망하는 국민이 많아졌지만 말이다.
공정 이슈의 시초는 ‘인국공 사태’였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중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하자 취준생들은 ‘로또 취업’이라고 반발했고, 아웃소싱업체의 채용 비리 의혹까지 더해지며 논란은 확산됐다.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산하 기관에서 일하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정규직들의 반발이 나왔다. 취준생이나 정규직이나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시험 보고 공채로 들어오지 않고 운이 좋아 정규직이 된다니까 공정하지 않다고 여겼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불법 투기 의혹과 KBS의 수신료 인상을 둘러싼 공정 논란 와중에 삐뚤어진 ‘능력만능주의’도 등장했다. 한 LH 직원은 익명 게시판에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부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라고,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밖에서 KBS 직원들 욕하지 말고 능력되고 기회되면 우리 사우님 되세요”라는 글을 올려 분노를 자아냈다.
공정이라는 말 속에 감춰진 능력주의(Meritocracy)의 단면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능력주의의 만능 키는 시험이고 성적이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었더라도 그것이 과연 그 사람만의 능력의 결과일까. 그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허상을 비판했다. 책의 카피 ‘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라는 질문은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 허를 찌른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공정하지 않을뿐더러 승자에게는 오만, 패자에게는 굴욕을 안겨주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비유에도 능력주의에 갇힌 포도원 일꾼들이 등장한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9시, 낮 12시, 오후 3시, 5시에 인력시장에 나가 일꾼을 뽑는다. 주인은 퇴근 시간이 돼서 근로시간에 상관 없이 똑같이 성인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씩 지급한다. 많은 시간 일한 일꾼일수록 불공정하다며 반발이 컸다. 그들은 오늘 하루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능력의 결과로만 생각했다. 포도원 주인은 정말 포도원에 일이 급하고 많아서 일꾼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 품삯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푼 것이다.
다윗 이야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사글락 병사 600명을 데리고 아말렉 군대에 대한 보복전에서 승리를 거둔 다윗. 그는 브솔 시내를 기점으로 낙오한 200명에게도 끝까지 전투에 참여한 400명과 마찬가지로 전리품을 챙겨준다. 포도원 일꾼들처럼 400명 병사도 불공평하다고 불만이 가득했지만 다윗은 브솔 시내를 건넌 자와 못 건넌 자를 똑같이 대한다. 그날의 성공을 자신과 400명의 능력에 따른 결과가 아닌 하나님의 관대한 은혜로 여기고 나머지 200명도 관대한 은혜로 대해야 한다는 게 다윗의 신념이었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마 19:30)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공이 나의 수고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 때문이라고 믿는다. 은혜랑 바로 연결되는 게 감사다. 오늘의 나는 내 공로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운 좋게 기회가 생겼고, 조건이 갖춰졌을 뿐이다. 브솔 시내를 건넌 자들아, 비정규직이나 LH와 KBS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베풀어진다고 노여워하지 말자.
맹경환 종교부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