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프랑스 대선. 지지율 1위 극우파 국민전선 후보와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슬람박애당 후보가 결선에서 맞붙는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좌파와 중도 우파 정당은 차마 극우파와 연합할 수는 없어서 온건·중도 노선을 표방한 이슬람박애당의 손을 들어준다. 세상에,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권이 탄생하다니!
내년이라는 시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다. 소설가 미셸 우엘벡이 2015년작 ‘복종’에서 이런 상황을 꾸몄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전혀 허황되지 않게 썼다. 세속주의로 인해 타락하고 곳곳이 무너져버린 서구 사회의 틈새로 이슬람이 들어와 자리 잡는다는 이야기다. 정치력이 탁월한 새 무슬림 대통령은 다른 분야는 다 양보해도 교육의 이슬람화와 일부다처제 허용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프랑스는 서서히, 부드럽게 이슬람화된다. 일과 삶에서 방황하던 40대 대학교수 주인공은 어처구니없게도 일부다처제에 끌려 개종하고, 이슬람 학교로 바뀐 직장에 복직한다.
소설이 던지는 건 정신이 황폐해져 퇴행적 선택을 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격렬한 야유다. 현대 사회가 자유나 휴머니즘 대신 여성의 절대적 복종과 가부장제로의 복귀 따위를 추구한다면 퇴행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한국으로 눈을 돌려본다. 이슬람 정당의 집권과 같은 극단적 상황을 가정할 것도 없다. 퇴행은 눈앞에서 진행 중이다. 여권에선 자유를 억누르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법안들이 줄기차게 나온다.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을 법안들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최고위원이 대표 발의한 역사왜곡방지법안을 보자. 3·1운동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일본제국주의를 찬양·고무하는 행위, 욱일기 등 일제 상징 조형물의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0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반국가단체 고무·찬양죄를 규정한 국가보안법 7조가 상존하고 있으니 일제 고무·찬양죄를 만들어도 된다는 건가. 역사왜곡 행위는 ‘진실한 역사를 위한 심리위원회’가 판단한다고 한다. 진실을 감별하는 기구인가 보다. 사상을 감별해서 처벌하겠다는 발상, 이것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구태 아닌가. 그런데 민주당은 이런 발상에 기초한 법 만들기에 열심이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이미 지난해 통과됐다. 제주 4·3사건이나 4·16 세월호 참사 등에 관한 역사왜곡을 처벌하는 법도 머지않아 만들 것 같다. 다 나름의 입법 이유는 있겠으나, 역사 해석을 국가가 독점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국립묘지에서 친일파를 파묘하자는 법안도 있다. 지난해 8월 이 법안 관련 국회 공청회에서 강창일 전 민주당 의원(현 주일대사)은 “우리 민족은 귀신 신앙이 있다”며 “국립묘지에 원수가 있는데 국가유공자들, 애국선열들이 저승에서 좌정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묘에서 원수를 솎아내야 순국선열들이 편히 잠들 수 있고, 우리의 민족정기도 살아난다는 얘기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국인이 아마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정기란 것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고, 과거의 귀신 신앙을 왜 지금 붙들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여권에서 주문처럼 되뇌는 개혁도 그 속내는 무언가를 진정으로 개선하려는 게 아니라 대상을 통제하고픈 욕망에 가까워 보인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포털사이트 기사 배열에 정부 위원회가 관여하도록 하는 법안을 내놨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아예 정부 기금으로 뉴스 포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두 의원의 아이디어 모두 포털의 기사 배열이 마뜩치 않으니 정권 입맛에 맞도록 직접 통제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언론 통제는 선진 민주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남국 의원의 법안을 비판하며 “반민주주의 망상론자들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이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국민이 상식적·합리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복종’의 주인공도 순순히 이슬람에 복종하는 삶을 택하며 “후회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터”라고 중얼거린다. 많은 사람들의 반이성적 면모가 곳곳에서 자주 보인다. 위태위태하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