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애틋한… 우리가 거쳐온 집들

입력 2021-05-20 19:51
소설가 공선옥이 '마흔 살 고백' 이후 12년 만에 새 산문집을 냈다. 전남 곡성의 초가집에서 태어나 오십 넘어 정착한 담양의 신축 주택까지, 작가가 그동안 살아온 집들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회고하는 '춥고 더운 우리 집'이 그것이다. 부동산과 인테리어 얘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짜 집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겨레출판 제공

소설가 공선옥(58)의 산문집 ‘춥고 더운 우리 집’은 살아온 집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한 자서전처럼 보인다. 초가집과 부로꾸집, 식당 방, 기숙사 방, 영구임대아파트를 거쳐 전남 담양의 신축 주택까지 그가 거쳐온 집들이 그의 인생을 보여준다. 촌에서 태어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돈 50∼60대들의 이야기이자 내 집을 찾아 헤매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다.

공선옥이 살아온 집들은 ‘스위트 홈’과 거리가 멀다.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낸 전남 곡성의 초가집은 구렁이가 와서 달걀을 먹어버리는, “아파트 세상에서는 믿기 힘든, 그러나 분명히 있었던 집”이었다. 아버지가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부로꾸집은 “사는 것이 한겨울 엄동설한 같았던 집”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광주로 나와 언니와 함께 살게 된 자취방은 식당에 딸린 방으로 만들었다가 지방 학생들에게 세준 방이었다. 이후 무수하게 떠돌게 되는 방들 중 첫 번째 방이기도 했다.

대학 생활을 1학년으로 끝내고 서울 정릉의 봉제공장에 취직해 들어간 기숙사 방에서는 울음으로 꽉 찬 아가씨들이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지냈다. 서른 살의 ‘어린 어미’로, 첫 단편을 막 발표한 초보 작가로 입주한 아홉 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는 어둡고 긴 복도만큼이나 간절하고 외로운 공간이었다.

다들 예쁜 집, 비싼 집, 즐거운 집을 열망하고 과시하는 시대에, 집 얘기라면 부동산과 인테리어가 전부인 시대에, 공선옥은 비만 오면 아궁이에서 물을 퍼내던 집, ‘보이라’에 자꾸 ‘에아’가 차서 냉골인 방에 아픈 엄마가 누워있던 집, 아이들을 데리고 짐을 끌고 떠돌던 집 얘기들을 한껏 늘어놓는다.

마치 이런 집들이 우리가 진짜 살아온 집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또는 가난하고 부끄러운 그 집들이 우리 집이고, 거기서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졌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무수한 잡담들 속에 간절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써내는 것이야말로 공선옥의 문학이다. 1990년대 이후 어떤 여성작가들과도 구별되는, 공선옥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가 태어난 곳도 그 집들이었다.

“그해 여름방학, 선풍기도 없는 방 안에 틀어 앉아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고통에 찬 앓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불현듯 글을 썼던 것이다.”

공선옥은 생애 첫 글쓰기가 시작된 순간을 떠올리면서 “다른 무엇도 아닌, 가난하고 외로워서! 가난하고 외로운 나날들의 노동이 너무 힘겨워서. 그것이 서러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뒤늦게 알아차린다.

작가는 또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 맞짱을 뜨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만히 숨죽이고 엿보는 것 같다. 내 미운 부로꾸집 들창문 아래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지금은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한 부로꾸집에서 나는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집은 물리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공간이다. 돈 덩어리만이 아니라 간절함, 외로움, 따뜻함 같은 감정들이 가득한 덩어리다. 그래서 집이란 누추하고 불편한 것을 넘어 모두 애틋한 곳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가 “악아, 어디 갔다 인자 오신가아”하며 맞아주던.

“입에 달린 사랑해, 힘내가 아닌, 한 생애들이 녹아 있는, 오랫동안 아궁이 불에 덥혀진 조약돌 같은 온기가 그득한 말. 그 말들이, 그 온기들이 실은 나를,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 이 세상에 내보냈으리.”

공선옥이 지나온 집들을 죽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나고 자라온 집들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부끄러워 숨겨온 집들도. 그 집에서 보낸 어떤 생애도.

“너무도 많이 떠돌았다”는 공선옥은 담양에 새로 집을 지어 정착했다. 책 후반부에는 가난한 소설가의 살 떨리는 건축기와 그 집에서 보내는 시골 생활이 경쾌하게 그려진다.

공선옥은 “비 오는 날의 우산으로서의 집” “눈 오는 날의 베이스캠프” 같은 집을 바랐다. 또 “집값 오르는 거 봐서 후딱 팔아치우고 떠나기 좋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사는 ‘임시 숙소’로서의 집이 아닌,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앉으면 두툼한 시간의 더깨가 내 등을 든든히 받쳐주는 집. 그것이 집이 아닌가”라고 썼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