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문가들은 20대 남성 앞에 놓인 취업, 결혼, 집과 같은 현실 문제의 원인이 20대 여성 때문인지, 현재 증폭되는 젠더 갈등이 정말 20대 남성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지 냉정히 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부쩍 잦아진 남혐 논란에 대해서도 ‘기분 나쁘다’는 부정적인 감정과 실재하는 폭력과 차별의 실체를 구분해 대처할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남혐’? 핵심은 폭력과 차별
‘이대남’으로 명명된 20대 청년들은 부족한 청년정책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남혐이 존재하느냐는 의문을 함께 던졌다. 일부 남성 네티즌은 ‘허버허버’ ‘오조오억개’ 같은 용어나 ‘손가락 그림’을 두고 여초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만든 표현이라며 반발했고, 이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하는 추세다. 특히 GS 포스터 사태처럼 남혐 낙인에 화들짝 놀란 기업들이 수습에 나서면서 남성 네티즌의 ‘전방위 공격’은 더욱 힘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남혐 논란이 거세질수록 이를 ‘여성혐오’(여혐)의 반대 개념으로 여기거나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불평등을 근원에 두고 있는 여혐과 최근 벌어지는 남혐 논란을 본질적으로 다르게 봤다.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를 연구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혐오 표현은 단순히 누군가 기분이 나쁘다거나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혐오 표현’이라고 규정하는 문제는 어떤 집단이 그 표현이나 태도에 의해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겪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 표현에 영향을 받아 혐오와 차별에 동참하기 때문에 논의가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여혐과 남혐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과거 ‘된장녀’ ‘김치녀’ 같은 여혐 표현이 문제가 된 것은 사회구조적 차별과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여성이라는 실존 자체를 위협했기 때문”이라며 “‘메갈리아’에서 용어나 그림을 만들었다고 남성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이 생기고 물리적인 폭력이 횡행하는지 생각해보면 남혐이 있다고 얘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남혐 논란을 촉발한 온라인 집단이 전체 성별을 대변하는 듯 ‘과잉 대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실은 복잡한데 ‘쉬운 혐오’ 택해
20대 청년들이 처한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면서 성차별에 대한 인식 변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3월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를 발표했다. 이는 청년층의 젠더 갈등 양상을 수치로 확인한 첫 보고서였다. 19~34세 청년 6570명을 조사한 결과 청년 여성의 74.6%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남성은 18.6%만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청년 남성은 절반을 넘는 51.7%에 달했지만 이에 동의하는 여성은 7.7%에 그쳤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성별에게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성별 인식 격차는 20대 초반(19~24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자신이 성별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다른 성별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는 낮게 인식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한 청년 세대가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간접적으로 성차별 경험과 피해를 겪으면서 인식의 차이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남초’ ‘여초’로 분리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보 격차도 원인으로 꼽혔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젠더 갈등의 배경에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제도와 문화가 존재한다”며 “청년들은 성별화된 규범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조는 변화가 더디다. 새로운 방식으로 젠더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취업이나 주거 등 생존과 관련된 어려움은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지만 사회구조적 차별을 학습할 기회는 적다는 점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청년들 삶 자체를 고민하고 대책 내놔야
20대는 성별에 따라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젠더 이슈에 대한 대응이 달라졌고, 이는 정치적 성향 차이로도 이어졌다. 다른 세대와 달리 20대는 유독 성별에 따른 정당 지지도 등에서 차이가 크다. 정치권은 ‘이대남’ ‘이대녀’와 같은 용어로 젠더 갈등을 키우고, 일부 정치인들은 온라인상의 남혐·여혐 같은 혐오 논쟁에 뛰어들면서 갈등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는 단순하고, 혐오에 반대하는 대안은 복잡하기 때문에 혐오 논쟁에 잘 대처하기 쉽지 않다”면서 “예를 들어 ‘한국 남성이 처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쉽게 얘기할 수 없는데, ‘여성 때문’이라고 말하면 확 와 닿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20대 남성 문제의 원인을 20대 여성 탓으로 돌림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가리고, 비생산적이고 의미 없는 논쟁으로 흐르게 한다는 것이다.
당장 20대 남성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군 복무 이슈와 관련, 장병의 인권 개선이나 병역기간 축소 등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엘리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소장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남성들의 억울함을 정책으로 풀지 않고 ‘여성도 군대 가라’고 말하는 건 하향 평준화나 다름없다”며 “장병의 봉급을 높이거나 군 조직을 바꾸는 병역제도 개선은 여성도 군대에 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남녀를 떠나 20대가 공통으로 직면해 있는 일자리와 주거 문제 등에 대해 정치권이 책임감 있는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희정 교수는 “경제위기가 심화할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진 이들이 약자를 공격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며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청년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박은주 기자 pse0212@kmib.co.kr
[이대남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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