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생 흉내낸다”-“차별해서 행복하냐” 고대 캠퍼스 전쟁

입력 2021-05-20 00:02 수정 2021-05-20 00:02
국민DB

지난달 14일부터 고려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종캠퍼스 학생이 고려대 학생 흉내를 낸다’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 식의 세종캠퍼스 학생을 저격하는 글이 올라왔다. 고려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세종캠퍼스 학생 A씨를 교육자치국장으로 임명하면서 갈등은 시작됐다. A씨는 서울캠퍼스에서 융합전공 과목을 수강하다 동아리연합회 추천으로 비대위 임원이 됐다. 세종-서울캠퍼스 교류회원 자격으로 총학생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지만,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반감 탓에 결국 임원 임명은 무효화됐다.

세종캠퍼스 학생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재학생 A씨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서울캠퍼스 학생들이 우리를 비하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매번 모욕적으로 느껴진다”며 “우리도 시험을 보고 대학교에 입학한 것인데 지방캠퍼스라는 이유만으로 ‘가짜 고려대 학생’으로 취급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재학생인 B씨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매번 (본교와의 갈등에서) 상처 받는 건 우리”라고 했다.

앞서 분교를 운영하는 대학들은 본교와의 구분을 지우기 위해 ‘캠퍼스화’ 작업을 벌였다. 법적으로는 분교가 별도의 행정적 지위를 갖지만, 본교의 경쟁력을 공유하기 위해 학생 교류를 추진한다는 취지다. 명칭에서도 지역 이름을 지우는 추세다. 연세대는 2018년 원주캠퍼스 이름을 ‘미래캠퍼스’로 바꿨고 건국대와 한양대도 각각 글로벌캠퍼스(충주), ERICA캠퍼스(안산) 등의 명칭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생 사이에서는 ‘학벌주의’에 기반한 무시와 차별이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졸업한 C씨는 “지금도 ‘원세대(원주+연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며 “비슷한 수준의 다른 대학을 갈 걸 하는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특정 요건을 충족하면 지방캠퍼스 학생의 소속을 변경해주는 제도가 생기면서 갈등은 더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소속을 변경한 학생을 두고 ‘소변○’이라는 비하 표현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연세대 커뮤니티에는 서울캠퍼스 학부생이 소속 변경을 한 지방캠퍼스 학생에게 수석 자리를 내주면서 ‘학과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놓쳤다는 글이 게재됐다. 당시 이 작성자는 ‘소변친구 들어와서 차석으로 밀림’이라고 적었다. 고려대 커뮤니티에도 소속 변경 제도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이 ‘서울캠 학생에 대한 역차별이다’ ‘세종캠은 고려대라는 타이틀을 너무 쉽게 가져간다’는 불만 글을 올렸다.

조롱과 멸시를 넘어 특정 학생을 겨냥해 조리돌림 하는 사례가 이어지자 학내에서는 학교 측이 갈등을 중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은 최근 대자보를 붙이고 “매번 반복되는 분캠과 본캠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라며 “이를 방관한 것에 (본교는) 정말 아무런 책임 없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학벌주의, 특정 캠퍼스에 대한 비하 또는 혐오표현 그리고 상처 받은 사람들 뿐”이라고 밝혔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